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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designer Apr 23. 2021

향기 나는 여자. 냄새나는 엄마.

냄새에 대한 오해.

음~~ 좋은 향기!

으~~ 냄새!!


향기와 냄새는 얼핏 생각하면 반대말 같다. '향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디선가 향긋하게 불어올 것만 같은 꽃향기가 느껴지는 반면 '냄새'를  떠올리면 방귀 냄새, 발 냄새 같은 구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냄새가 향기의 상위 개념이다.

[ 냄새 :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 ]

[ 향기 : 꽃, 향, 향수 따위에서 나는 좋은 냄새 ]


그런데도 이 두 단어가 반의어처럼 느껴진 건 '향기'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강력함 때문이었을까?

향기롭다. 향긋하다 등의 형용사는 듣기만 해도 후각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그에 비해 냄새는 쓰레기 냄새, 하수구 냄새, 입 냄새, 술 냄새 등과 같이 부정적인 단어가 먼저 생각난다.


냄새와 함께 쓰이는 긍정적 의미의 단어들은 없을까?라고 생각하자마자 떠오른 몇 가지 단어가 있다. 그런데 웬걸. 단어에도 편견을 가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엄마 냄새''아기 냄새'다. 물론 엄마 향기, 아기 향기라고 한다고 해서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왠지 어색하다. 엄마와 아기라는 단어에는 아무래도 향기보다는 냄새가 붙어야 자연스럽다.


향기가 코로 맡을 수 있는 실제의 '향'이라면 냄새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국어사전에 설명되어 있는 냄새의 두 번째 뜻은 '어떤 사물이나 분위기 따위에서 느껴지는 특이한 성질이나 낌새'이다. 엄마 냄새나 아기 냄새는 차라리 이쪽에 가깝다. 엄마와 아기가 서로 주고받는 냄새가 어떻게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만을 뜻하겠는가. 그 안에는 서로 간의 깊은 애정과 믿음이 함께 있다. 그래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냄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첫 출산을 하고 작디작은 아기를 안고 집에 왔을 때 집 안은 아기 냄새로 가득 찼다. 꼬숩고 시큼한 아기 냄새가  좋아 자주 목덜미에 코를 파묻곤 했었다. 갓 태어나 눈이 안 보이는 갓난쟁이도 신기하게 내 품에만 오면 울음을 뚝 그쳤다. 우리는 서로의 냄새를 맡으며 편안해졌고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어갔다.




서른여덟. 한 남자의 아내, 세 아이의 엄마 가 된 나는 향기보다는 냄새가 어울리는 사람이 됐다.

이십대의 내가 시트러스 향이 나는 '여자' 였다면 지금의 나는 젖비린내를 풍기는 '엄마'다.


냄새라는 단어에 편견이 있었던 것처럼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마음도 가끔 편견이 생길 때 가 있다.

'난 이제 더 이상 여자로서의 매력은 없는 걸까?'

'남편은 날 보면 예전처럼 설렐까?'

'대학 동기 모임이라도 나가면 예전의 내 모습은 없고 그냥 아줌마처럼 보이겠지'


가끔은 서글프다. 향수는 멀리한 지 오래고 매니큐어는 하루면 벗겨 없어질 거라 바를 엄두도 안 난다. 짧은 치마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어본 기억은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고 머리는 하나로 질끈 묶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절대적이고 고유한 어떤 영역에 나를 쏟아부어야 할 때 내가 사라지는 것 같다. 육아가 그렇다. 엄마라는 존재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한번 들어선 이상, 그만두거나 되돌아가거나 쉬어갈 수도 없다.


나에 대한 편견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괜스레 조금 우울해질 때면 생각한다.


인생은 시시각각 변하고 지금의 나는 파릇하고 생기 넘쳤던 향기의 시간을 지나 아이들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인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아이들의 아기 냄새가 희미해지고 엄마 냄새를 조금 덜 필요로 할 때 즈음엔 진중하고 농밀한 냄새를 풍기는 '여자 사람'을  다시 만나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는 것을.








내일, 곰돌이 빵 작가님은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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