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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designer Mar 02. 2021

어린이집 선생님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

가정 어린이집 예찬.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벌써 세 번째 이별이다. 나의 이별이 아닌 내 아이들의 생에 첫 이별들. 

드디어  여름, 하늘, 바다 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 세 아이를 회사와 가까운 국공립 어린이집에 모두 함께 보내겠다고 한 계획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오늘은 막내 '바다'가 다니던 가정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동안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약소하지만 떡을 맞췄다. 바로 만든 떡을 드리고 싶어 근무시간에 잠깐 나와 방금 나온 따뜻한 떡을 들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퇴근 후 하원 시간에는 저녁 연장 보육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담임선생님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 이기도 했다. 매일 다니는 등 하원 길인데 아이 없이 혼자 가려니 마음이 좀 이상했다. 문 앞에 서서 '띵동' 하고 초인종을 누르고 "누구세요?"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바다 엄만데요, 잠깐 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하고 잠시 기다리자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오셨다. 문이 열리고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이 터졌다. 사실 어린이집 가는 길 내내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빨간 눈을 보자마자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흘러버렸다. 그렇게 선생님과 나는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 두 손을 꼭 잡고 "감사해요. 정말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해요"라고 간신히 말했고 선생님도 "아니에요, 이제 바다 못 봐서 어떡해요"하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셨다. 바다랑 정이 많이 들어서 주말에 이틀 못 보는 것도 너무 보고 싶고 얼마나 컸을까 월요일이 기다려졌다고 하시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인사가 길어지면 너무 많이 울 것 같아서 "선생님 오늘 키즈 노트에 선생님이랑 바다랑 같이 찍은 사진 하나만 꼭 올려주세요. 바다한테 자주 보여줄게요" 말하고 얼른 뒤돌아섰다.


세 번째 이별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였다. 첫째 아이 둘째 아이 때도 똑같았다. 정작 아이들은 이별이 뭔지 몰라서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른들만 슬픈 이 상황. 세 번 모두 똑같이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그렇게 눈물을 흘렸었다. 나야 원래 눈물이 많긴 하지만 선생님들은 또 왜 그렇게들 우셨는지. 우리는 뭐가 그렇게 슬펐던 걸까?


세 아이 모두 100일도 안된 갓난쟁이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를 돌봐주셨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아이들과 선생님이 정이 많이 들었고 선생님들 모두 나보다 더 예뻐해 주시고 정성으로 돌봐주셨다. 가정 어린이집은 5살까지 밖에 못 다니기도 하고 세 아이가 함께 있는게 좋을 것 같아 7살까지 다닐 수 있는 국공립어린이집으로 셋을 함께 보내겠다고 미리부터 계획한 일이긴 했지만 어쨌든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세 번의 이별을 나의 의지로 만들었다. 그게 미안해서였을까? 선생님과 아이의 이별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참 많이 아팠다. 



아이들에게 진심인 선생님들.

나의 세 아이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세 분의 선생님이 계시다. 뒤집기도 못하는 갓난아기 때  처음 만나 첫 뒤집기, 첫 배밀이, 첫걸음마, 첫 이유식, 첫 이가 났던 날, 낮 갈이가 시작돼 입을 삐쭉거리며 울던 날들, 내 아이가 사람이 되어가는 그 처음을 어쩌면 나보다 먼저 발견하고 지켜봐 주고 함께해 주신 분들이다. 일하는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않도록 오히려 더 위로해 주시고 걱정 말고 일하라고 하시면서 응원해 주셨던 선생님들. 등원할 때 선생님이 말해주시는 '다녀오세요'와 하원 할 때 아이를 안고 나와 '다녀오셨어요' 해주시는 말이 참 많이 고맙고 힘이 됐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정성스럽게 남겨주시는 키즈노트에 답장도 잘 못하는 엄마였지만 그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마지막 날 그렇게 눈물이 났던 건 아마도 그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정말 감사하고 고마워서.. 그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눈물이 되어 나왔던 것 같다.


선생님이 나눠주신 다정한 마음들.


가정 어린이집 어때요?


어린이집 학대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 입장에서 그런 기사를 보면 정말 화가 난다. 내 아이가 아니라도 당장 그 어린이집에 쫓아가 아이들을 학대한 선생님을 만나서 똑같이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몇몇의 선생님들 때문에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으로 돌봐주시는 수많은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받을 눈초리와 상처가 걱정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것도 네 복이야. 그렇게 좋은 선생님들 만나는 것도 드물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이를 학대하는 선생님은 극히 일부일 뿐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보육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적어도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모두 그랬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있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엄마들은 모두 알 것이다. 직업이라 할지라도 아이를 돌보는 일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한다. 이런 선생님들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 또한 내가 만난 모든 선생님들에게 진심이었고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다. 많은 육아서와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는 적어도 세 살까지는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라는 말을 들었다. 엄마가 키우는 게 제일 좋다는 걸 모르는 엄마는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육아 방법이 있고 각자의 사정도 있을 것이다. 나는 최선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을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나의 든든한 '육아 메이트'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짧아 애착형성을 걱정했었지만 선생님들이 아이와의 애착 형성을 잘해주신 덕분에 나와도 안정적인 애착이 잘 형성됐고 어릴 때부터 종일반 어린이집에 보낸 워킹맘임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의 눈에서 '불안'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첫아이가 100일도 되기 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을 하고 첫 등원 전날 밤 마음이 생생히 기억난다. 


'이렇게 품에만 안겨있는 핏덩이 같은 아이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키워줄 수 있을까?' 

'난 정말 나쁜 엄마야.'

'그냥 일을 그만두고 내가 키울까?'

'엄마가 미안해.. 너무 미안해'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울기도 하고 이 생각 저 생각 걱정스러운 마음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누구보다 아이들과 즐겁게 인사하며 헤어진다. 나보다 더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함께해 줄 선생님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진심인 나의 '육아 메이트' 선생님들이 있는 한 내 육아는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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