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30분.
방의 스위치가 켜지며 환한 불빛 아래 남편이 서 있다.
“여보, 나 병원에 가야 해.”
잠결에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던 나는 튕기듯이 일어나 남편 곁으로 간다. 남편한테서 풍기는 탄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119에 전화를 건다. 남편은 “아니, 시간이 없어. 그냥 당신 차로 가는 게 빨라.”
남편을 태우고 비상등을 켠 채 전속력으로 달려 가장 가까운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로 뛰어 들어간다. “화상 환자는 한일병원으로 가셔야 해요.”
한일병원 응급실. 이제야 나는 남편의 손과 발을 본다. 빨갛게 익어서 붉은 핏물을 뚝뚝 흘리는 두 손과 두 발을 당직 의사가 소독하고 있다. 나는 울면서 핸드폰으로 그 장면을 영상으로 남긴다. 내 가슴속에서는 더 시뻘건 피가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
2015년 10월 7일 새벽 3시.
남편이 작업하던 방에 불이 났다. 충전하던 배터리가 부풀어 올라 사방으로 불꽃이 퍼지면서 여기저기 옮겨 붙자 남편은 급한 마음으로 작업하던 수건을 손에 감아쥐고 맨손으로 불을 껐던 것이다. 나는 잠결에 “쿵”하는 소리를 듣기는 했으나 1시에 잠이 든 탓에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방에 불이 켜지면서 “여보, 나 병원에 가야 해” 하는 그의 시커먼 모습을 보고서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까맣게 타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고 몸에서는 탄 내가 물씬 났다. 그 불을 끄느라 자기 손과 발이 다 타들어 가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다. 남편은 이미 화상으로 감각이 없는 손으로 옷을 갈아입고 환기장치를 돌린 후 나를 깨웠던 것이다. 남편의 손과 발을 수건으로 감싸서 차에 태우고 쌍문동에 있는 한일병원으로 정신없이 달렸다. 신호등의 빨간색은 내 차가 도로 위 정지선에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병원의 응급실로 들어가 화재로 탄 살을 다 씻어내는데 손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그 핏물보다 더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가슴이 조여 왔다. 나는 숨을 쉬지 못한 채 울면서 소독하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핸드폰을 들어 동영상 촬영을 하였다. 소독을 끝낸 의사는 “혹시 호흡기로 화기가 들어갔다면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고, 손은 이식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남편을 응급실에 눕혀놓고 혹시 집안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불씨를 확인하러 다시 집으로 가는데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신부님께 남편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드리고 나 역시 운전하면서 쉴 새 없이 기도했다. 그런데 집이 가까워질수록 마치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이 마구 뛰어댔다.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왼손으로 누르며 운전했다. 남편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오는 동안 이미 집은 화염에 휩싸여 거동이 불편하신 시어머니와 반려견 훠리가 다시 못 올 세상으로 갔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운전하는 나의 양손은 운전대 위에서 소리를 내며 떨어댔다.
아파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에 소방차가 와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 아파트 안으로 화재가 번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쉼과 동시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집 안으로 들어와 보니 남편의 작업실을 빼고 다른 곳은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평온하기만 하였다. 어머니 역시 그간의 소동을 전혀 모르신 채 주무시고 계셨다. 나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희를 죽음의 골짜기에서 구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쏟아져 나왔다. 남편의 작업실로 들어가 화재의 잔해를 치우니 커튼과 책상 위의 종이들과 책상, 방바닥 그리고 통신기계의 전선이 타다만 채로 흉물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편은 매일매일 마약 진통제를 주사로 맞으며 피부를 벗겨내는 통증을 감내해야만 했다. 양손과 양발을 붕대로 칭칭 감고 간병인의 손을 빌어 생활하길 보름이 되었을 때, 그날은 토요일이라 아침부터 병원 갈 차비에 바빠 허둥대며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무슨 큰일이 생겼나 보다 싶어 “왜? 무슨 일 있어? 상태가 안 좋대?”라며 남편의 대답을 재촉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하고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내 울먹이며 “나 이식수술을 안 해도 될 것 같대”하는 것이었다.
기적!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털썩 주저앉아 큰 소리로 “하느님! 저의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나이 60이 넘은 사람이 이런 화상을 입고 이식수술 없이 회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환자분의 의지와 놀라운 회복력에 저희 의사들도 신기해하고 있어요. 너무 감사하고요.”라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남편의 화재 사건이 있고 몇 달 후 저녁 회식 후 대리운전기사를 불러 귀가하는데 운전기사의 오른손이 주먹손인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궁금해서 왜 그렇게 되셨냐고 물으니 불이 나서 손의 근육이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아 주먹손이 되었노라고 하셨다. 순간 ‘남편 손도 저리 될 수 있었는데…’ 하는 마음이 들어, 또 한 번 남편한테 일어난 기적에 감사하게 되었다.
남편은 퇴원하고 수년이 지나도록 오른손 검지와 장지의 체온이 정상보다 낮아 그 두 손가락은 늘 얼음장처럼 찼다.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남편의 손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가끔 그 끔찍했던 기억을 망각의 영역 속으로 밀어 넣곤 한다.
남편을 정상적인 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신 그 기적에 늘 감사해야 함에도 시간은 나의 감정을 점점 무디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을 살려만 주시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던 그 결심이 내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지기 전에, 다시 한번 남편과 함께 웰다잉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5.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