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 일지 #14

#14 Bowling for Highland Park 미국 총 이야기

by 마틴팍

지난 7월 4일. 미국에서는 가장 큰 국가 공휴일인 '독립기념일'이었다.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도 그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전국에 있는 바닷가에서 밤새 폭죽을 터트리고 기념하는 큰 행사이다.(물론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이슈들도 있지만..) 우리 가족은 처제 집이 있는 동네의 큰 공원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보면서 밤늦게까지 있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놨던 상황이었다. 일요일 오전, 갑자기 뉴스가 들려왔다. 시카고 노스 서버브 중 하나인 'Highland Park'에서 진행되던 마을 행사에서 총기 난사가 벌어져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온 가족은 긴장을 했다. 물론 아이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는 정서상 안 좋을 거 같아 와이프와 소곤소곤 얘기를 나눴고, 온갖 SNS의 업데이트를 살펴보며 집에서 불안해하며 대기상태로 있었다.


사고가 벌어진 곳은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밖에 안 되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고, 시카고 노스 서버브 중 소득 수준이 높은 부촌 중의 하나였다. 매 독립기념일마다 전통적으로 진행되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퍼레이드 중에 참사가 벌어졌다. 결국 7명이 사망했고, 수십여 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두 살배기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으로 감싸 숨진 한 젊은 부부의 얘기 등 너무나도 슬픈 사연들이 잇따라 보도되었다. 사건 직후 시카고 인근의 모든 독립 기념일 행사는 취소되었다. 범인은 그날 오후에 위스콘신 주로 올라가는 고속도로에서 체포되었다. 10대 후반의 청년이었는데, 하일랜드 파크에서 총기난사 이후 위스콘신의 다른 서버브인 '매디슨'에서 또 다른 총기난사를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가 만약에 그쪽으로 이동했더라면 하는 생각에 순간 아찔해졌다. 행사는 취소되었지만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 처제 집으로 가게 되었고, 식료품을 사기 위해 잠시 들른 마트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무언가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하일랜드 파크 총기 난사 후 좌절하는 경찰관의 모습]


그동안 미국 내 총기사건은 수없이 들어왔다. 학교에서의 총기난사, 얼마 전 라스베이거스 콘서트 현장에서의 총기난사 등 여러 사건을 뉴스로 접할 때마다 놀라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정작 '남의 일'처럼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도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니 너무나도 피부에 와닿았고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 범인이 하일랜드 파크가 아닌 우리 동네를 타깃으로 삼았더라면, 또는 우리가 그 축제에 참석했더라면.. 하는 상상을 해보면 소름이 돋기도 했다. 잡힌 범인은 놀랍게도 하일랜드 파크 거주민이었고, 아버지가 시의원을 할 정도로 멀쩡한 집의 자녀였다.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가족 살해 협박을 하는 등 그동안 여러 차례 문제가 있었지만, 확실한 범죄가 아니어서 그냥 지나갔는데, 결국 이렇게 큰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에서 총기류 구매는 아주 쉬운 일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월마트에 가면 총기 소지 면허를 돈 주고 쉽게 살 수 있고, 총과 총알을 판매하는 코너도 별도로 있다고 한다. 최근에 본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시즌4'에서도 중고생인 주인공들이 군납용품 매장(Military Surplus shop)에서 각종 총기류를 쉽게 구매하는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다.(물론 그들은 악마를 퇴치하기 위함이었지만) 결국 이번 사건의 범인인 10대 청소년도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자동 소총을(수십여발이 연속으로 발사되는) 부모의 돈을 받아 구매하였고, 범행에 사용하게 되었다. 이 부분이 총기류가 심하게 금지되어 있는 나라 출신인 나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지만, 정작 미국인들의 절반 가량은 총기 소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낙태금지법' 만큼이나 총기 규제 관련 이슈는 미국에서 찬반 논란이 많은 '뜨거운 감자'인 것이다. 최근에 즐겨보는 유튜브인 '미국 아재'의 경우도 일부 콘텐츠에서 미국인에게 총기 소지란 일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보면서 '음.. 실제 미국인들은 총기 소지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구나..'라고 느끼기도 하였다.


*내가 즐겨보는 여행 유튜브 '빠니보틀'도 미국 남부 여행 중 사냥 체험을 하게 되는 데 거기에서 만난 젊은 청년 또한 총이 미국인에게 얼마나 '필수재'인지를 강하게 어필한다.


그동안 미국의 역사(개척시대, 독립전쟁, 연방제도 등)나 지리적인 특성(광활한 대지와 낮은 인구밀도 등)을 고려해보면, 총기는 어찌 보면 자기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을 것이고, 지금도 그렇게 좋지 않은 치안 상태를 고려하면 그 연속성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80년대 LA에서 폭동이 났을 때도 한인들이 총기류를 구해서 자체적으로 본인들의 생활터전을 보호했던 사실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부작용들이 여러 번 나타나게 되면 심각하게 고민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여기에 또 미국의 정치적 이슈가 개입되어 있기도 한데, 그 얘기는 하자면 너무 골치 아프니..(실제로 하일랜드 파크 사건 이후에 트럼프는 미 총기 협회 같은 이익단체 모임에 나가 총기 소지를 옹호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익이 언제나 정의와 안전을 앞서는 자본주의 국가다 역시)

저 사건 이후에는 어딘지 모르게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행사나 축제를 조금 꺼리게 되었다. 물론 이건 하나의 운명처럼 우리가 조심한다고 피해 갈 수 없는 성질의 것일 수도 있겠으나, 사람의 심리상 다소 위축되긴 하였다. 세상 위험하다는 남미, 필리핀에서도 살아봤으면서도 오히려 더 조심하게 되는 요즘이다.

*멕시코에서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걸어 다니던 집 앞 거리에서 총기 사건으로 두 명의 시체가 누워있는(역시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 페인트로 윤곽선 그려놓는..) 사진을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던 나였는데 말이다.


(다음 회에 계속)


[나에게 미국 총기 소지 이슈를 처음 알게 해 준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Bowling for Colombine']


*표지 설명 : 하일랜드 파크 사망자 추모를 위한 행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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