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 일지 #15

#15 도심 어부

by 마틴팍

주중에는 거의 집에 없는 회사원 아빠, 남편이다 보니, 주말은 최대한 아이와 함께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말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선 함께할 수 있는 일종의 액티비티가 필요했다. 으레 그러하듯, 아이는 커가면서 곤충, 동물에 관심이 생겼고,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는 낚시에도 관심이 생겼다. 나는 사실 어렸을 때도 그렇고, 그전까지 제대로 낚시란 걸 해본 적도 없었고, 최근 '도시 어부' 등 예능 등을 통해 낚시 인구가 늘어나긴 했지만, 한국 와이프들이 싫어하는 3대 취미 중 하나인 (고급 오디오 수집, 오토바이, 낚시였나?) 낚시를 굳이 시작하진 않았던 터였다. 만 오천 원짜리, 스파이더맨이 그려진 어린이 낚싯대 하나 가지고, 어설프게 갯지렁이 겨우 연결해서 바다낚시에 성공한 게 20년 여름, 강원도 고성에서였다. 설마 잡힐까 하는 심정으로 해수욕장 옆 갯바위에서 던져 봤는데, 신기하게도 성공하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아이도, 나도 낚시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강원도 고성에서 바다낚시에 성공했던 시절]


용인 수지에 살다 보니 집 근처에 낚시 인프라가 잘 되어 있었다. 이른바 손맛 낚시터도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 30분 정도 투자하면 꽤나 큰 낚시터에 갈 수 있었다. 날이 추워지면 '실내 낚시 카페'도 자주 가곤 했다. (한국은 역시 모든 걸 실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나라이다) 인내심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 어린이에게 몇 시간식 기다려서 대어를 낚는 '어른들의 낚시터'는 재미가 없으니, 수시로 낚을 수 있고, 포인트 모아서 각종 장난감도 살 수 있는 '실내 낚시 카페'는 그야말로 최적의 장소였다. 실내 낚시터가 질릴 때쯤에는 주변에 있는 '바다 낚시터'에도 자주 갔다. 바다어종을 낚아 볼 수 있고, 낚으면 바로 회를 떠서 집으로 가져갈 수 도 있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낚시하러 한번 가면 4~5만 원은 금방 쓰게 되며, 심지어 바다 낚시터는 7만 원 정도였다. 약 1년 반 동안 낚시에 쓴 돈만 어림잡아 기백만원은 넘었을 것이다. 어떤 날은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 가족과 포천에 있는 '낚시 펜션'을 예약해서 하루 종일 낚시하고 1박을 하기도 했다. 숙소 주변에 '블루길'이라는 외래어종이 많아서 (삼각형으로 생긴 작은 민물고기 류) 수시로 낚을 수 있는 형태라 아이들에겐 최고의 공간이었다.

[바다낚시 한다고 배멀미 참고 배도 타보고, 늦은밤에 한적한 항구에서 낚시도 해봤던 그때]


미국에 와서 가장 놀랐던 점은 동네 곳곳마다 각종 강, 호수, 연못들이 많고, 거의 모든 곳에서 자유롭게 낚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같은 가족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조건인 셈이다. 더 이상 실내외 낚시터에 한 번에 4~5만 원 투자하지 않아도 몇 시간씩 마음껏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이 'Catch and Release' 방식으로 손맛만 즐기고 놔주는 형태가 많으나, 어떤 곳은 하루 몇 마리까지는 가져갈 수도 있다. 시카고 도심 주변의 미시간 호수 변에서는 11월에 연어가 대거 이동하는 철이라 그때 잡은 연어는 마음껏 집에 가져가져도 된단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11월이다. 재밌는 점은 낚시를 하려면 'Fishing license'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운전면허처럼 '취득'하는 게 아니라, 월마트에 가서 돈 주고 '발급' 받는 형태이다. 동네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우리 동네 주변은 30불이고, 위에서 언급한 미시간 호수 연어 낚시하려면 5불 추가해야 한다. 이 라이선스 없이 낚시하다 경찰에게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니 얼른 만들고 말았다.

[미국에서 와서 자주 찾는 동네 인근 호수들]


처음에는 작은 '블루길' 들만 잡아도 너무나도 재밌었다. 역시 월마트에서 구매한 지렁이(Red worms 혹은 Night crawler)를 미끼로 던지면 자주 잡히게 되어 어린이들에게 너무나도 즐거움을 선사했다. 가끔 멀리 던지면 메기(Cat fish)도 몇 마리 잡게 되는데, 우리는 메기를 매운탕도 끓여 먹고 귀한 생선으로 여기지만, 미국에서는 잡자마자 놔주거나, 그냥 일부러 죽이는 '흉측'한 어류로 취급당하고 있다. 블루길 낚시에 이제 시시해진 아이와 나는 조금 더 큰 '대어'(?)를 낚기 위해 배스 낚시로 옮겨갔다. 배스(Bass)는 집 근처 탄천에 엄청 서식하던 흔하던 종류고 한국에서는 외래어종으로 다들 천시하는 종인데, 여기에서는 다들 배스를 낚기 위해 열심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가끔 잉어가 잡히는데, 여기에서 잉어는 아무도 안 잡고, 우연히 잡히더라도 역시나 바로 죽여서 버려지는 생태계 파괴범으로 몰리고 있다. 물고기들도 각자 자기가 있어야 하는 자리가 있나 보다.


배스 낚시는 조금 더 다른 기술(?)을 요구하다 보니, 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 중이다. 살랑살랑 거리는 가짜 미끼로 배스들을 꾀내어야 하는데, 아직 기술이 부족한 건지, 낚시 채비가 어설퍼서 그런지 제대로 대어를 못 낚고 있다. 아마존에서 약 50불어치 배스 전용 키트도 장만하고, 낚싯대도 새로 장만했는데도 그렇다. 유튜브로 '배스 낚는 법'을 열심히 보고 따라 해 봤지만, 여전히 내 낚싯대에는 수초만 걸려서 나온다. 그러다 우연히 함께 낚시 갔던 아이의 사촌동생이 배스를 낚아 올렸다. 내 팔꿈치 길이 정도 되는 나름 큰 배스였다. 눈앞에서 실물을 목격한 아이와 나는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우며 주 2회 이상 낚시를 가고 있다. 배스 전용 미끼도 또 구매하였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낚시지만, 어느덧 나도 낚시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이러다 나중에는 고무보트라도 사서 물에 들어가서 낚시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카약이나 보트를 가지고 와서 호수에 띄워서 낚시하는 아저씨들도 많이 만났다.

*이 글을 쓴 뒤 같은날 오후에 다시 배스 낚시 도전했는데 오늘 드디어 아이가 팔뚝만한 Largemouth Bass를 낚았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드디어 잡은 라지 마우스 배스]


낚시를 가보면 예전에 미국 영화에서 많이 봤던 장면들을 볼 수 있다. 다 큰 청년과 중년의 아버지가 둘이 함께 낚시를 와서 몇 시간씩 낚시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그런 장면들 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한 취미활동(?) 이란 게 딱히 기억나지 않는 나로서는 부럽기도 하고, 어찌 보면 일종의 '로망' 같은 모습이었다. 아마 내 또래의 한국 남자들은 아마 대부분 그랬을 듯하다. 우리 시대 아빠들은 돈 버느라 주말도 없이 바빴거나, 자기 아이들과 놀아줄지 모르는 '무뚝뚝한 아저씨'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나 스스로도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는 아니지만, 그래도 '낚시'라는 공통의 취미를 갖게 된 것은 너무나도 다행이다. 아직 날씨가 추워지지 않아서 당분간은 낚시를 같이 할 시간이 많다. 아이가 커서도 나중에 낚시와 골프를 평생 같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하곤 한다.


최근에 아이들이 다른 지역, 나라로 대학을 가거나 군대를 가게되어 집을 떠나는 가족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토이스토리 3'에도 나오는 장면인 대학에 가는 아이가 부모 곁을 떠나는 시점인 것이다. 지금의 나로선 '언제 다 커서 대학가나, 그때 되면 와이프랑 둘 만의 시간도 많이 가지겠지?' 싶은데, 막상 그 시점이 온 부모들은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나도 이제 9년 조금 안 남았는데, 이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이와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할 것 같다.


(다음 회에서 계속)


*표지설명: 하늘이 물에 정확히 반사되어 멋있었던 동네 근처 어느 호숫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