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내가 미국행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
비자를 받고 나서, 주위에 미국에 가게 되었다고 알렸을 때 지인들이 하는 대부분 질문들은,
1. 가면 어떻게 생활비를 벌거냐(무슨 일을 할 거냐)
2. 가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냐
이렇게 두 가지였다.
1번에 대한 답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나중에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이 중 2번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이 교육'이었다. 나와 와이프는 요즘 한국 학부모처럼 엄청난 교육열의 소지자도 아니고, 그만한 경제적 능력도 없거니와, 오히려 그 반대쪽에 위치한 사람들에 가까웠다. 철저히 한국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나와 한국과 미국의 교육을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던 와이프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 교육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하곤 했고, 상당히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아이의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이었으면 좋겠다는 점이었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고, 다소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는 우리 가족의 미국행은 이 문제에서 바로 결정되고 말았다.
짧게나마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아이가 유치원 시절 중 2년 정도를 해외에서 보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유치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주재원 생활을 조기 종료하고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예전에 지인의 자녀가 다녀서 알게 된 기독교계 대안학교를 고민하게 되었다. 일반 학교보다는 학비가 다소 부담되었지만 그래도 결국 사교육비와 비슷할 거라는 계산으로 남들보다 6개월 먼저 초등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이미 유치원이 끝났던 아이에게 8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미국 학제가 오히려 유치원과 초등학교 사이의 애매한 gap이 없도록 해주었다.) 학교에서는 영어로 수업을 하고, 커리큘럼도 미국 학교의 것을 그대로 따라서 거의 국제학교 같은 학교였지만,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일종의 '가성비 국제학교'였다. 미국 학제를 따르다 보니 8시 반에 등교하여 3시 반에 끝나는 등 초등 저학년 치고는 수업시간도 길었고, 한 반 학생수가 10명 조금 넘다 보니 공립학교에 비해 학생 개개인에 대한 케어도 되고, '코로나 이슈'로 인한 온라인 수업을 하는 비중도 적었다. 거의 며칠 빼고는 코로나 기간 내내 등교가 가능했던 건 어찌 보면 행운과도 같았다.
[한국에서 아이가 다니던 학교 교실 풍경]
영어로 수업을 하는 국제학교라서 좋았다기보다는, 학교 분위기나 운영 정책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교회를 베이스로 한 학교다 보니 시설도 작고 열악했지만, 선생님들도 교포 3 세거나, 미국인이어서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나, 학급 운영이 합리적이었고, 무엇보다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도 상당히 자유로웠다. 공립 초등학교를 보내지 않다 보니 인근 초등학교에서 조사를 나온 적이 있다. 행여라도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학대하는 부모인지를 검증하는 절차였다. 한 초등학교 교사분이 아파트까지 와서 와이프와 아이를 세워놓고 대면 인터뷰를 하였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그 선생님은 아이에게 '똑바로 서있으라'라고 지시를 했다고 한다. 참 우리나라 학교 선생님 같은 멘트였다.
미국에 오면서 학교 결정은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영어가 로컬 미국인에 비해 모자랄 수밖에 없는 아이에게 공립학교로의 편입은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졌다. 학급 규모가 작아서 무언가 조금 더 케어를 받을 수 있고,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학교를 찾게 되었다. 다행히 처제 아이가 다니던 학교의 같은 반에 들어갈 수 있었고, 원래 한 학년을 낮추는 것까지 고민하였으나,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원래 학년으로 이어가기로 결정하였다. 학교에 들어간 지 두 달이 조금 더 넘은 지금 시점, 아이는 다행히 잘 적응 중이다. 같은 반에 있는 사촌이 든든하고, 전체적으로 새로운 학생에 따뜻하게 해주는 학교 분위기의 힘일 것이다.
[학교에서 열린 Home coming day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기분좋은 행사였다]
[등교길에 학부모 차량 안내는 교장선생님이 직접나와서 한다. 학교 행사날에는 학교 운동팀 마스코트 사자인형이 등장하기도 한다. 아마 그 안에도 어떤 선생님인 듯]
아직도 나의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1학년 시절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 한 반에 60여 명 가까이 있었고, 그것도 학급이 모자라 오전, 오후반을 나눠서 등교하던 시절 이야기이다. 한 손에 탬버린, 한 손엔 캐스터네츠라는 걸 들고 담임선생님을 따라 하는 음악 시간이었다. 나만 두 악기를 반대로 들고 있었는지, 선생님이 호랑이 같은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질렀다. 뭐 선생님이 학생에게 소리 지르는 게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겠지만, 학교에 처음 간 8살짜리 아이에게 그날의 기억은 아직까지 선명하다. 전국에서 깡패 학교로 가장 유명했던 중학교(매일매일이 격투장이었던), 비리사학으로 뉴스에도 나온 고등학교(선생님들 마저 회사원 같았던)를 지내오면서 학교에 대한 기억이 좋지 만은 않았던 나였다.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각종 활동도 열심히 해서 나중에 좋은 대학에 가면 좋겠지만, 억지로 아이를 푸시하거나 엄한 기대는 안 하고자 한다. 이 부분은 와이프와 상당히 동의가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다만 내가 어려서 겪었던 그런 강압적이고 암기만을 강요당하는 환경에 아이를 두고 싶지는 않다. 어렸을 때는 많이 뛰놀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게 해주고 싶다. 아이가 자라면서 본인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내 꿈이다. 물론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너무 이상적인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 것이 바로 미국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니까 말이다.
*얼마 전 어떤 대학 교수님에게 들으니 미국 학생들은 학업에 투여하는 시간 그래프가 우상향으로 대학교 3, 4학년 때 정점을 찍어서 입학 시 7,80점짜리 학생도 졸업할 때 100점짜리가 되는데, 한국 학생들은 고3 때 이미 정점을 찍어서 대학교 입학 후에는 체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100점짜리가 입학해서 졸업할 때 7,80점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는 코멘트였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