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는 시카고의 택시운전사(?)
대학시절 인상 깊게 봤던 책 중의 한 권은 홍세화 씨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였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이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한다니 대단한 걸?'이라는 단순한 흥미 정도로 접근했는데, 내용은 사뭇 무겁기도 했다. 군부정권의 탄압이 싫어서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프랑스로 건너가 힘든 생활고를 견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직업인 셈이다. 길이 복잡하기로 유명한 파리 한복판에서 한국인 아저씨가 택시 운전을 한다니, 그 책을 읽었던 98년 당시에는 꽤나 신선하기도 했다. 홍세화 씨도 한국사회에서 공부 꽤나 했던 엘리트 지식인이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그를 육체노동으로 밥벌이를 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가진 PD란 직업은 사무직 같기도 하지만, 모든 방송계가 그렇듯 반은 육체노동이기도 했다. 특히나 24시간 중 20시간(때로는 24시간 할 때도 있지만)을 이른바 '생방송'으로 운영되는 홈쇼핑 회사 특성상 이른 새벽, 늦은 밤, 주말 가릴 것 없이 근무해야 하는 일종의 '체력전'이며, 업무 현장 자체도 촬영 로케이션이거나, 생방송 스튜디오 역시 발로 뛰어야 하는 '노동의 장'이기도 했다. 이삼십 대에는 한주에 5개 이상의 라이브 방송을 척척 잘도 진행했다. 그렇게 주말도 없이 일하면서도 동료들과 술도 많이 마시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다. 40대에 접어들어 관리자가 되어서는 상대적으로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를 붙잡고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장시간의 미팅, 보고는 일상화가 되었다. 결국 미국 오기 얼마 전에는 고질적인 허리가 다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해서 며칠을 쉬어야만 했다.
미국에서 나는 앞으로 이른바 '화이트 칼라'(White Collar)로 내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영어가 완벽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보다 미국 로컬 회사에서 나를 채용할 만큼 미국 베이스의 학위나 미국에서의 커리어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문화적인 차이도 클 것이다. 사무직에서 동료들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하는데, 지금의 문화 이해도와 영어 수준으로는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쉽지않을 것이다. 물론 한인들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에서는 오피스 워크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선택의 폭도 무지 좁고, 일의 성격도 일반적인 사무직 업무랑은 많이 다를 것 같다. 이제 나는 다시 20대 시절로 돌아가 몸으로 일해야하는 태세 전환이 필요하게 될지 모른다.
미국에 오기로 확정을 하고 나서, 벤 애플랙이 나오는 '컴퍼니 맨'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다.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다시 한번 찾아보게 되었다. 극 중 주인공인 벤 에플렉의 상황이 어쩌면 지금의 내 상황과 상당히 비슷함을 느껴서 더 보고 싶어 졌는지도 모른다
*컴퍼니맨 : 잘 나가던 선박회사 중역인 '벤 애플렉'은 2009년 금융위기 시절, 하루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된다. 금방 재취업할 거라 자신하는 것과 달리, 재취업은 쉽게 되지 않고, 울며 겨자 먹기로 사이가 좋지 않던 매형(케빈 코스트너) 밑에서 건축일을 하게 된다. 건축일을 하며 세상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평소 자신을 끌어주던 부사장(토미 리 존스)이 기존 멤버들을 모아 회사를 설립하면서,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한다.
2003년 2월, 제대 후 모은 돈으로 뉴질랜드에 어학연수를 갔었다. 당시에 가장 친한 친구 놈은 본인은 더 현실적인 경험을 하고 싶다며 옆 나라 호주로 당시 유행하던 '워킹 홀리데이'라는 비자로 가게 되었다. 어학연수를 대략 마치고, 심심했던 나는 그 친구도 볼 겸, 호주라는 더 큰 나라도 궁금하게 되어 그 친구가 있던 시드니로 가게 되었다. 당시 친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어느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나보고 용돈이나 벌라며 일주일 정도 나를 불렀는데, 그 공사 파트장한테 무지하게 혼이 났다. 내 일하는 속도나 힘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컴퍼니 맨'에서도 벤 애플렉이 일이 서툴러서 매형에게 무시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남의 얘기 같지가 않았다. 나는 어찌 보면 몸 쓰는 일에는 평균 이하였을지도 (지금도..) 모른다.
미국은 인건비가 워낙 비싸서, 일상 생활에서도 본인의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나라다. 일반 주택에 산다면 수시로 잔디관리를 하거나, 집 청소, 간단한 수리, 이사 등도 본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 큰 돈을 지불하게 된다. 일례로 수도가 막혀서 사람한번 부르면 바로 100~200불이다. 그래서인지 피트니스 센터에 가보면 10대 청소년부터 70대 이상 노인까지 모두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이야 멋진 몸매를 만들어 이성에게 어필하려는 의도가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 보이는 40대 이상의 회원들은 대부분 '생존'을 위한 운동이므로 무언가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얼마전 저녁자리에서 만난 이민 30년차인 50대 남자분은 매일 아침 일어나 팔굽혀펴기를 300개를 한다고도 했다. 나도 한국에서는 '운동부족'의 전형적인 아저씨의 라이프스타일로 지내고 있었는데, 여기와서는 절실함을 느껴서 얼마전 집근처 피트니스를 등록하고 말았다.
[정작 호기롭게 피트니스를 등록하고는 좋아하는 농구를 하느라 근력 운동은 뒷전이다]
내가 시카고에서 택시운전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뭐 못할 것도 없겠지만 서도), 아마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과는 사뭇 다른 성격의 일을 하게될 것이다. 아직은 내 스스로 완전히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어찌보면 지난 십수년간 대기업이라는 보호막 속에서 몸 편하게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입으로 일하고, 글써서 일해왔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광야로 나갈 시간인가 보다.
(다음회에 계속)
*표지설명 : 미시간 호수에 가을은 연어 철이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밀워키 북부 Port washington 까지 갔건만 나와 아이는 한마리도 못잡고 아쉬운 눈물을 흘리며 복귀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