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아랫동네 아이들 밥을 챙기러 가는 길
은애가 총총 길동무가 되어준다.
은애가 따라오는 기척이 없어서 뒤를 보았는데
남자가 은애 앞에서 몸짓으로 겁을 주더니
앞발을 구르려는 순간
은애야, 이리 와!
내가 부르니 가던 길을 간다.
방금 핸드폰을 보며 내 옆을 지나던 평범한 사람이다.
놀란 은애는 내게 오지도 못하고 얼음이 됐다.
늦은 밤 한적한 골목의 길고양이는 저 남자에게 무었일까?
동물학대 사건은 매일, 매 순간, 지금도 일어난다.
동탄 길고양이 연쇄 살해범, 감나무에 묶인 순천 리트리버, 코만 내놓은 채 산채 땅에 묻힌 제주 유기견...
그 모든 일에 분노하지만
당장 내 앞의 아이 하나 안전하게 돌보는 것도 이리 어렵다.
밥때면 내게 부비며 궁디팡팡 해달라던 은애는
며칠 간 밥을 먹고는 휙 멀어졌다.
나도 무서운 건지,
나를 못 믿을 인간이라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내 곁을 지날 때는 그저 평범한 동네 사람이었다.
동네 길고양이에게 위협하는 정도야 당연한 거라고, 특별한 의도없이 자연스럽게 한 행동이라는 게 더 문제다.
악의 평범성.
은애는 천천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