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지구를 탈출하는 마케터를 위한 안내서

1화. 120살 먹은 '깔때기', 이제 그만 관짝에 넣어드리자

by 김보영

1화. 120살 먹은 '깔때기', 이제 그만 관짝에 넣어드리자


마케팅 밥을 20년 넘게 먹으면서, 도저히 풀리지 않는 찝찝함이 하나 있었다. 처음엔 내 실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답답함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고민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범인은 바로 우리가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그 그림이었다.


마케팅 입문하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는 역삼각형, 깔때기(Funnel)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 나도 그동안 발표 자료에 이 그림 참 많이 우려먹었다. 이거 하나 넣으면 왠지 논리적으로 보이니까.


그런데 문득 이 친구의 출생 연도가 궁금해 찾아봤다가 기절할 뻔했다. 이 개념의 뿌리(AIDA 모델)는 무려 189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98년이라니. TV는커녕 라디오도 없던 시절이다. 우리나라는 고종 황제가 커피 마시며 가비(Gabi)를 논하던 대한제국 시절이다.


그때 만들어진 낡은 지도를 들고, 스마트폰과 AI가 날아다니는 2026년의 마케팅을 하려니 당연히 길을 잃을 수밖에.


요즘 고객들 움직이는 꼴을 봐라. 깔때기 타고 얌전하게 내려오던가? 나만 해도 그렇다. 넷플릭스 보다가 인스타 밈 보고 낄낄대고, 단톡방 알림에 딴짓하다가 유튜브 리뷰 영상 찾아보고, 3일 뒤 퇴근길 지하철에서 뜬금없이 결제 버튼을 누른다. 이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미끄럼틀이 아니다. 오히려 시공간을 제멋대로 넘나드는 마케팅 멀티버스(Multiverse)를 여행하는 모습에 가깝다.


나는 3D 게임 엔진을 만드는 유니티(Unity)에 몸담고 있다 보니, 이 납작한 종이 위에 그려진 깔때기가 더 못 견디게 불편했다. 세상은 입체인데, 왜 마케팅만 평면에 갇혀 있는가?


만약 마케팅을 2차원 평면이 아니라, 3차원 입체 공간인 '구(Sphere)'로 바라보면 어떨까?


이 엉뚱한 상상을 시작으로, 나는 Sphere Marketing(스피어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설계했다. 이 입체적인 우주에서 고객은 깔때기 밑으로 떨어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브랜드가 가진 매력, 즉 중력(Gravity)에 이끌려 스스로 궤도(Orbit)를 그리며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위성이다.


앞으로 매주 한 번씩, 내가 탐험하고 있는 이 마케팅 멀티버스의 여행기를 풀 것이다. 거창한 학술 이론? 아니다. 이건 우리가 놓치고 있던 고객의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한 생존 가이드다.


깔때기라는 낡은 안경을 벗어던질 준비가 되었는가? 스포일러를 조금 하자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쩌면 좀 충격적인 혼돈의 카오스일지도 모른다. 다음 주에는 그 적나라한 현실, 예쁜 깔때기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부터 먼저 까발려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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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