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결정적 순간, 나를 지켜낸 선택

by BAAM

인생 최대의 중대사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선택 앞에서 신중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무엇을 먼저 챙겨야 할지.

이것이 나에게 진짜 필요한 건지.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지.

잠깐의 허기에 속아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진 않을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치밀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후보를 비교했다.

리뷰를 읽었고, 사진을 확대하며 배달비 천 원 차이를 두고 삼 분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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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피자로 결정했다.


그제야 폰을 내려놨다가 다시 들었다.

습관처럼 뉴스를 열었다.

세상이 또 출렁이고 있었다.



나를 먹고 자라는 거대한 괴물


세상에는 특정 에너지를 먹고 사는 것들이 있다.

분노,공포,불안,결핍을 먹는 것들

그것들은 선과 악의 개념이 없다.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 그렇게 작동한다.


작게는 이렇다.

숏폼이 넘쳐나자 디톡스를 찾는 사람들이 생겼다.

자극이 과해지자 고요가 팔리기 시작했다.

불안이 커지자 명상 앱 구독자가 늘었다.

한쪽이 극에 달하면 반대쪽이 자란다.


크게는 이렇다.

성공 이야기가 쏟아지자 그것을 먹고 사는 것들이 생겼다.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넘쳐났고, 그 말을 파는 강의가 넘쳐났고,

그 강의를 사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이 넘쳐났다.

불안이 커질수록 강의는 더 팔렸다. 진자는 더 크게 흔들렸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가.

디톡스를 해도 숏폼으로 돌아간다.

강의를 사도 삶은 그대로다.

진자 위에서 흔들리는 동안 에너지는 소진된다.

내가 그 진자의 연료가 되고 있다는 걸 모른 채로.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되고,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된다.

세상은 늘 그렇게 순환해왔다.

그리고 그 순환이 계속되는 한,

누군가의 고혈은 계속 빨린다.




물의 깊이


그 진자 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은 건 아니다.


익사하는 사람이 있다.

분노 뉴스만 보고,

강의만 사고, 성공한 사람을 보면 잠을 못 잔다.

진자가 흔들리는 대로 몸이 따라간다.

본인은 그걸 열정이라고 부른다.



떠내려가는 사람이 있다.

딱히 빠진 건 아닌데 흐름을 타고 있다.

다들 하니까 본다. 다들 사니까 산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그냥 흘러간다.



발만 담근 사람이 있다.

보긴 보는데 크게 영향받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근데 자기 전에 그 생각이 돌아온다.

아침에 눈 뜨면 확인하고 싶어진다.



물가에 서있는 사람이 있다.

물이 출렁이는 걸 본다.

차갑다는 것도 안다.

근데 발이 젖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발만 담그고 있다고 생각했다.

크게 휩쓸리는 것도 아니고, 일상도 멀쩡했다.

피자도 잘 골랐다. 근데 자기 전에 폰을 들었고,

아침에 눈 뜨면 확인하고 싶었고,

그 에너지가 하루를 조금씩 물들이고 있었다.

티가 안 났다. 그래서 더 오래 걸렸다.




서서히 자라나는 넝쿨


건물은 모른다. 매일 조금씩 감기고 있다는 걸.

어느 날 문득 보면 이미 덮여있다.

넝쿨이 건물의 에너지를 먹고 자란 게 아니다.

건물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넝쿨이 자랄 수 있었던 거다.

해안선도 그렇다. 파도가 매일 온다. 해안선은 그 자리에 있다.

티가 안 난다. 오래된 사진이랑 비교해야 안다. 그때야 안다. 얼마나 깎였는지.


에너지가 스미는 방식이 그렇다.

내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

내 주의가, 내 감정이 그들을 자라게 하는 토양이 되었고,

내 시간을 깎아내는 파도가 되었다.


인식 자체가 이미 거리다.


발이 젖어있다는 걸 아는 순간, 물가로 나올 수 있다.

떠내려가고 있다는 걸 아는 순간, 헤엄칠 수 있다.

모르면 그냥 흘러간다. 흘러가면서도 멀쩡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정을 느끼지 말자는 게 아니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다만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이 만들어낸 건지를 한 번쯤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다른 위치다.



누가 내 눈에 바람을 불어도


채널을 끄는 게 아니다.

다 봐도 된다. 세상이 출렁이는 걸 본다. 진자가 흔들리는 걸 본다.

누군가 고혈을 빨리는 걸 본다. 감정이 온다. 그걸 느낀다.

근데 거기에 나를 전부 내어주지 않는다.

눈을 감는 것과 눈을 뜨고 있기로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버티는 것이고, 후자는 내가 여기 있기로 한 것이다.

바람이 불어도 눈을 감지 않는 것.

그건 강인함이 아니다.


그냥 내가 볼 것을 내가 고르는 것이다.


개개인을 붙잡고 설명할 수는 없다.

저 사람은 지금 떠내려가고 있다고, 발이 젖어있다고.

그 흐름은 거대하고 나는 작다.

부질없다는 감각은 맞다.

근데 그게 이 글을 쓰지 않을 이유는 아니었다.



선택은 나의 몫


세상의 진자가 흔들리는 걸 본다.

누군가의 에너지를 먹고 자라는 것들을 본다.

감정이 온다. 그걸 느낀다. 그리고 고른다.

나는 그 진자에 올라타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만들기로 했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지금 이 글이 그것이고, 어제 쓴 글이 그것이고, 앞으로 쓸 글이 그것이다.

작고 느리고 부질없어 보여도, 내 에너지가 향하는 곳이 있다.

그쪽으로 계속 흐르고 있다.


오늘 밤에도 나는 피자를 고르는 데 십 분을 쓸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떻게 출렁이든 그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는 내가 고른다.

그것만큼은 온전히 자기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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