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한달 간은 출근을 하지 않는 게 너무 좋았다.
목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고,
평일 오전에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럭셔리하게 느껴졌고,
지인들도 평일 점심에 여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평일에 골프장이던, 식당이던 이렇게 사람이 많다는 게 신기했다.
내가 회사에 있었던 시간 동안에는
회사 밖 다른 세상은 없눈 줄 알았다.
그 세상에 놀라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한 두어달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뭔가 불안감이 몰려왔다.
오전 10시면 남들은 출근해서 뭔가를 의미있는 일을 할 텐데,
점심시간이면, 누군가를 만나서 일 얘기던 세상사는 얘기들을 나누고 있는 시간일텐데,
이전에 하루를 보냈던 루틴들과 비교하면서 자꾸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타이트 하게 돌아가지 않는 나의 시간들이 뒤쳐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하루 종일 가야 연락 한통 없는 내 일상에 위축되는 느낌도 들었다.
여전히 나는 나의 시간으로 살기 보다는
남이 짜준 시간표에 의해서 사는 게 익숙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다시 아침 출근, 저녁 퇴근하는 삶으로 들어가야 하나 이런 생각도 자주 했다.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나의 시간을 통제하는 힘이 없어졌던 것 같다.
그 불안과 헤매는 시간들을 건너서 이제는 좀 출근없는 삶에 익숙해져가는 것 같다.
스스로 할 일을 찾아내고, 목표를 세우고, 또 필요한 연락을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익숙해져가고, 또 나름대로 생산적이라고 생각이 되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책을 쓰자는 제안이 와서 기획을 시작했고,
강의 안을 달라는 후배제안이 와서, 막무가내로 강의안을 던져놓고,
그 강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아직 컨펌 전이지만, 언젠가는 쓰겠지 하는 마음으로.
또 온라인 코칭플랫폼에서 면접에 통과했으니, 이제부터 코칭을 하라는 연락을 받고,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온라인에서의 새로운 고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은 출근하지 않는 하루가 편안하다.
아무도 나에게 뭘 하라고 하지 않아도 편안하다.
하루 종일 한통의 연락이 오지 않아도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은 안 든다.
이런 변화들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일단은 이 변화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가만히 있는 일상에 익숙하지 않으니
자꾸 밖으로 돌아다녔다.
강의도 듣고, 그림도 그리고, 약속 잡아서 계속 사람 만나고.
근데 그렇게 해서 그 공허감이나 불안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다 끊어버렸다.
그리고 최대한 혼자 있어 보려 했다.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지고, 스스로 편안해지고, 즐거워지는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자꾸 외부의 어떤 자극에, 어떤 사람들에 매달려서는
안되겠다고 판단 했던 거 같다.
물이 차오르는 시간을 기다려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느 정도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근력이 생기면서
무언가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또 제안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다시 성과와 마감이 있는 일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물론 출근은 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평생했던 루틴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선배들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 루틴에 적응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을 보기는 했다.
자기 작업실이나 혹은 공유오피스에 매일 나가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기도 하고,
또 아예 처음에 그 당황스러움을 마주하기가 어려우니
외지에 한달살이나, 심지어는 외국에 한 일년 이렇게 나가시는 분들도 있다.
다 나름의 방법으로 출근 루틴을 변화시켜간다.
어쩌면 그때는 그렇게 출근하기 싫었지만, 돌이켜보니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어쨋든 인생에서 전성기였으니, 그리워할 만도 하겠지.
아직 출근 하는 남편이,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다는 소리를 하면서 나간다.
그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말해준다.
"출근도 얼마 안 남았어. 그리워하는 하는 날이 올 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