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대학을 졸업하고 싶지 않았다.
저 왜 벌써 졸업이에요?
축축한 바닥에 내던져지는 기분이었다.
대학에서 보낸 시간들이 나에게 거의 기적과도 같아서였을 것이다. 나는 대학시절 동안에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여기 있다는 사실에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장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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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특수학급에 소속되기는 했지만 모든 수업을 비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들었다. 그러니 아마도 거의 특수학급에서는 잊힌 애물단지였을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에 화장실을 참아야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이 버릇이 되어 소변을 보려고 해도, 한참 막혀 있는 기분에 시달렸고 방광염을 앓기도 했다. 급식은 누군가 받아주어야 했고, 또 함께 먹은 뒤 버려주어야 했다. 남이 먹고 남긴 반찬들을 직접 버려주어야 하는 수고로움. 10대 아이들이 과연 그걸 감당하고 싶다고 할까. 그 정도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살아남아야 하니, 선생님은 그 작은 아이들을 앉혀놓고 내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줄 '착한' 아이를 찾아야 했다. 나를 도와줄 마음이 있으면 손을 들라고 했고, 대체로 한참의 시간이 지나 도저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겠다 싶을 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역시 고맙지만, 미안했다. 언젠가부터 내 마음에서는 이런 문장이 뿌리 깊게 자라고 있었다. 내가 없었으면 조금 더 좋았을 텐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는 좀 더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어서, 더 이상 '착한 아이 찾기'는 하지 않아도 됐지만, 여전히 나를 도우면 너무나 착한 아이가 되었다. 그 일을 도와주는 가까운 친구가 있으면 그것에 대한 어떤 고마움, 그리고 그보다 큰 미안함 혹은 죄책감을 먹으며 지냈다. 정말 간혹이었지만, 수동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를 두고, 내가 다 먹지 못한 반찬들이 다 식어가도록 내버려 두고 떠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라고 했지만, 당시에 나는 그게 참 무서운 사람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조금이라도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눈동자를 마주치고, 그 눈동자 속에 내가 있고, 그런 나를 되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두 번은 내가 있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 어려웠다.
손이 생각보다 느려서, 필기는 그저 단어로 하는 습관을 만들기도 했다. 밑줄을 긋고, 간단한 단어를 적고. 어딘지 다른 친구들보다 허전한 내 교과서는 따로 채워 넣어야 했는데, 어디까지나 배려에 의지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혹시나 불쾌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 혹시 필기를 좀 보여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는 거였다. 내 고마운 친구들은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역시 매번 그것을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단어를 오래 붙잡기.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문장을 만들어 덧붙이기. 그리고 동시에 선생님의 다음 말을 듣기. 일종의 멀티플레이어. (솔직히 2% 이상 부족한.) 그것이 내가 빈 교과서를 채우는 주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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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시스템상으로 손 사용이 불편한 유형의 장애를 가진 경우라면 대필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여기서의 대필이란 말 그대로 교수님의 말씀 전부를 그대로 속기해 주는 것으로, 덕분에 나는 필기에 쫓기지 않고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천천히 읽으며 다시 필기를 채워 넣으면 되는 방식으로, 기억이 휘발될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집에 돌아와 복기하며 채워나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을, 그 누군가는 근로의 개념으로 나를 도와주고 있어서 작지만 대가를 받아갔고 점점 더 미안함보다 고마움만 채워나갈 수 있었다.
시험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장애 유형에 맞게 대필이나 시간 연장을 받을 수 있어서, 시간에 쫓기는 것에 대한 불안을 많이 내려두었다. 심지어 나는 생각을 정돈하고, 세상을 진단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문장으로 정돈하는 일이 중요한 전공이어서, 교수님들의 배려로 정해진 시간 없이 편하게 시험을 보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타자 속도가 느려도 지각생이 되지 않는 건 물론, 글을 계속 쓰라는 칭찬까지 먹어가며 나는 무사히 자랐다. 문장에는 힘이 있었다. 사람을 살고 싶게 하는 힘이.
나는 다른 사람을 살리고 싶었고, 또 한편으로는 나 역시 무사히 살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 어둡게 보여도, 아주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 나의 바람을 앞에서 이끌어주신 교수님들 덕분에, 꼭 뭐든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보이지 않지만 따뜻하기만 한 응원 덕분에 나는 대학원을 권유받은, 학과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학원을 택하지는 않았고, 경력도 없고, 경험도 많지 않은 나는 그렇게, 모두가 취업이 어렵다는 인문계열 척척학사가 된 것과 동시에, 백수가 되었다. 잠깐만, 이제 어떻게 살아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