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배고픈 장애인이 취업하는 법

장애인 재택근무 시스템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취업 플랫폼에는 '없는'.

by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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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혹시 사기 아니야?


취업 시장에 내던져진 뒤에 느끼는 거라면, 나는 '잘 팔리는' 장애인은 아니었다. 뇌병변이라는 장애유형도, 디자인을 할 수도 없고 경력이 없으니 대단한 마케팅을 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 흔하다는 엑셀을 다루는 자격증 하나 없고, 어문계열을 전공한 휠체어가 있어야 하는 장애인. 게다가 지방에 사는.


심지어 내게는 꿈도 있었다. 적당히 아무 사무보조에, 적당히 조용한 장애인으로 살아남을 생각이 없었다는 말이다. 나는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이십 년 남짓인 긴 터널처럼 우울한 시기를 지나오면서도, 글을 읽고 쓰며, 그 일에 의지하며 살아남은. 나는 적당히, 조용히, 아무 일이나 하며 살고 싶지가 않았다. 의미가 있어야 두 눈이 빛나는 사람이었다. 기왕이면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화살표가 되었으면 했다. 물론 그 의미는 내가 부제를 붙이기 나름. 그렇게 대단한 바람까진 아니었다. 아마도. 콘텐츠를 다룰 수 있는 일을 하거나, 기사나 칼럼을 쓰거나, 블로그 마케팅을 한다든가. 그리고 가장 큰 욕심은 출판업계에 뛰어드는 것.


나는 곧 수긍했다. 이것 참 어려운 일이 되겠구나. 우선 출퇴근만 해결되면 좋겠다 싶었는데.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입에게 그런 특권이 주어질 리 없지. 자격증을 따거나, 새로운 것을 공부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더 많이 열려 있는 문을 찾기로 한다. 3학년 때 잠시 휴학을 하고 있을 때 알아보았던 장애인 재택근무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좌표를 잘못 찍었다. 사람인, 잡코리아 등으로 재택근무라고만 찾은 것. 우선 블로그 글 작성 등이었고, 건 당으로 진행하는 일 같은 것을 포함하여, 장애인 재택근무라고 적힌 것도 몇 개 나왔는데. 죄다 사기 같은 분위기다. 지금이야 돌아가는 시스템을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기묘한 위화감이 이상했다. 사실은 다 알고 지금 봐도 영 수상하게 생겼어. 회사 이름도, 업무도 제대로 알려주질 않는다.


이게 바로 어른의 사정인가 싶다.

브이**으로 대표되는 장애인을 재택근무 형태로 기업과 연결한다는, 수많은 업체들. 참고로 업체명의 일부만 모자이크 처리 되거나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업체들도 있었지만, 입사 전까지는 내가 무슨 회사에 지원했는지 알 수조차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배고픈 놈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나는 배가 고팠다. 당장 백수 상태를 우선 탈출해서, 경력이라도 쌓고 싶었다. 우선 이력서를 등록했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서 이력서를 내겠냐는 연락이 오거나, 면접을 보겠냐고 묻거나, 심지어는 갑작스러운 합격 통보가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해보니 당연히 사기는 아니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었지만, 면접 하나 보지 않고 채용을 결정하는구나. 이상한 마음이었다. 아무리 계약직이고, 심지어는 3~4시간에 최저시급으로 고용한다지만 직원으로 존중하려는 마음이 있는 걸까. 작은 의심은 들었다. 하지만 사실 이미 이력서를 넣고 한 달 정도 지난 후였고 몇 번의 따가운 탈락을 받아낸 뒤였고 나는 용돈을 이제 그만 줘도 된다고, 내 용돈 정도는 내가 벌어내겠다고 부모님께 말한 상태였기에 취업을 해야 했다.


문자가 하나 찍혀 있었다. 입사가 결정되었으니, 중증장애인확인서를 포함한 필요 문서들을 메일로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면접을 본 기억도 없는데, 급여는요? 기업 이름은요? 나는 최종 합격 연락을 받고, 필요하다는 서류를 제출하고서야 그것을 물어볼 수 있었다. 그조차 채용 입사를 결정해야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참 이상하네 싶었다. 의외로 아마 고용부담금을 목적으로 고용할 것 같은데. 그런 장애인 근로자인 나에게 최저시급이 아닌 그 이상을 제공하는 (사실 식대 포함) 회사로 입사를 결정하게 되었지만, 찝찝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무를 순 없다. 우선 빈 시간을 잘 이용해 볼 마음이었다.


참, 그제야 업무에 대해서 묻자 여러 업무 중 원하는 업무를 아무거나 하나 고르면 된다고 했다. 역시 굉장히 수상하다. 나는 우선 글을 쓰며 의미를 찾는 사람. 내가 나에 대해서 아는 건 겨우 그 정도였다. 그러므로, 나는 우선 기사를 다루는 마케팅 직무를 골랐다. 당장 공백기라고 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내 용돈과 시집값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그런 미묘한 설렘을 가지고 시작한 3시간 정도 되는 마케팅 보조를 보는 계약직. 이것도 취업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너무 쉬운 취업이 덜컥 되어버려,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나의 가장 큰 스펙은 중증장애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무서워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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