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문상을 다녀왔다. 최신식 시설로 번쩍거리는 세브란스 장례식장과 달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작고 아날로그적이었는데, 그래서 좋았다. 바로 옆방 빈소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를 들으며 문상객 앞에 놓인 음식을 먹으면서 왜 하필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그 장면이 생각났을까. 마치 화장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듯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창녀가 있는 허름한 컨테이너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병사들이 나오는 그 장면.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장례식은 그렇게 볼일을 처리해버리고 마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95세의 어르신은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저 세상으로 가셨다고 하니 호상이어서 장례식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 장례식을 징검다리 삼아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해 12월 어이없는 계엄 사태 이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선배의 남편은 최근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는데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가 더해져 디스크 통증이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닌 게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그 밖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 들리는 말들이 귀를 통과할 때마다 심장에 벌컥벌컥 화가 치솟는 것을 느낀다.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니, 그 ‘국민’은 어디에 있는 어떤 분들일까. 국민을 위해서라니, 그 ‘국민’은 어느 먼 골짜기에서 세상과 담을 쌓은 채 면벽수도 중에 있는 분들일까. 그분들이 입에 올린 ‘국민’은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로마 시대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가 자주 이야기했던 유명한 비유, 핵전쟁 위험을 강조하면서 존 F. 케네디가 언급한 ‘다모클레스의 검’ 이야기가 생각난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시칠리아 역사서에 다모클레스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고 한다. 다모클레스는 그리스 권력자 디오니시오스의 신하였는데, 다모클레스가 디오니시오스를 너무 부러워하자 디오니시오스는 어느 날 다모클레스에게 자신의 왕좌를 잠시 빌려주었다. 그토록 부러워하던 자리에 오르자 다모클레스는 신이 났지만 얼마 안 가 그 자리가 결코 행복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언제든지 죽음이 찾아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자리, 침상 위 머리맡에 날카로운 칼이 매달려 있는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권력의 위험한 측면을 비유하고 있는 ‘다모클레스의 검’은 화려해 보이지만 언제 목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검 밑에서 늘 긴장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권력자의 자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요즈음의 너무나 상식 밖이어서 믿어지지 않고 당황스럽게 초현실적인 상황은 ‘다모클레스의 검’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너무나 철면피한 범죄자는 격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탓에 ‘다모클레스의 검’이니 하는 고전의 비유를 섞어 말하기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경고해 주려던 격언의 품격에 한참 못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