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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혁명은 없다

by 디디온

빔 벤더스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쿠바 음악에 대한 매력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체 게바라에 관한 평전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시절도 있었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난 뒤의 일이고 80년대 내내 격렬했던 민주화운동이 사그라들던 무렵의 일이다.


쿠바 하면 ‘부에나 비스나 소셜 클럽’ 만큼 ‘혁명’이란 낯선 단어와 ‘체 게바라’가 떠오른다. 혁명이란 단어가 낯선 이유는 ‘진짜’ 혁명은 이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을 내려놓기를 원하지 않은 독재자가 자신의 쿠데타를 ‘혁명’으로 포장하였던 시절도 있었다. 쿠바는 지구상에 몇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의 하나이고, 카스트로의 주도로 사회주의 혁명을 이룬 국가이다. 쿠바 혁명의 중심에는 체 게바라가 있다. 체 게바라는 혁명의 대스타이다. 아르헨티나의 의대생은 어인 일로 쿠바로 건너가 혁명 세력의 일원이 되었을까.


2015년 넷플릭스에서 개봉된 《쿠바 리브레 스토리》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쿠바 혁명을 거쳐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뻔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까지 쿠바에 대한 역사를 담고 있다. 현실의 실체는 매력적인 것들의 무덤인지도 모른다. 쿠바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혁명은 현실 모순에 대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상 혁명의 속살까지 알게 되면 체 게바로 인해 생긴 혁명에 대한 낭만이 사라지고 만다. 환상이 사라진 것에 대한 사람들의 대처는 어떠한가.


혁명을 성공한 이들은 혁명을 완수했는가. 혁명을 완수했다면 오늘날 쿠바의 모습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카스트로의 개혁은 정말 순수했을까. 인간의 욕망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세상 일이 오해와 추문과 합리화로 얼룩져있듯이 혁명 또한 예외가 아니다. 혁명도 인간의 욕망에서 발원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추동은 그 혁명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내밀한 무의식에 있다. 욕망은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환상 속에서 인간은 살아간다. 내가 나의 모습을 완전하게 보지 못하듯, 내가 나의 환상을 완전히 걷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볼리비아 혁명을 위해 게릴라전을 하던 체 게바라는 전투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쿠바 리브레 스토리》를 보면 적군에 사로잡히는 모습이 나온다. 그렇게 멋진 혁명군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죽음도 전투 중 사망한 것으로 위장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도 알고 보니 매우 싱겁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우리 알고 있는 것들은 과연 진짜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그 모든 모순과 진실과 진실 아닌 것들이 서로 뒤엉켜 있는 것이 삶이다.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것이 삶이고 끝내 불가해한 것으로 남는 것이 또한 삶이다. 내가 지금 아는 것은 아직은 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뿐인지도 모른다.


체 게바라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면서 인기를 끈 것에는 배우 같이 잘생긴 그의 외모도 한몫했을 것이다. 쿠바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체 게바라의 사진은 마돈나만큼 유명해졌다. 1960년 라 코브레호 폭발 사건으로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 아바나에서 행진하는 체 게바라의 그 유명한 사진. 체 게바라는 이제 보드카, 음료수 광고에 사용되는 단골 브랜드로 각광받는다. 티셔츠와 커피잔에서 체 게바라를 만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더 이상 아름다운 혁명은 없다. 혁명이 아름다운 순간은 모든 것이 뒤집히던 그 순간뿐이었을 것이다. 혁명을 하려던 자들은 혁명이란 이상, 혁명에 대한 환상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불태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바뀌었고 인간을 능가할지도 모르는 인공지능이 탄생하여 전쟁도 컴퓨터로 하는 시대 혁명이란 무엇일까. 《곽재구 포구기행》에는 김훈의 이런 말이 들어 있다.


“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만큼 아름다운 혁명은 이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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