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할 책이 많다 보니 소설 읽는 시간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는 짧기라도 하지. 소설보다는 산문을, 시보다 시인의 산문을 더 즐겨 읽는다. 이상하게도 소설 읽는 시간이 아깝다면서 오랫동안 안 읽을 즈음 매력적인 소설을 만난 기억이 있다. 기대를 안 하고 읽다가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던 소설 목록에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가 있다. 그리고 최근 읽은 김지연의 《조금 망한 사랑》이 그렇다. 이 소설들은 이래도 소설 읽는 시간이 낭비이냐고 나에게 묻는 것 같다.
《조금 망한 사랑》에 실린 단편들은 빼어나고 새로웠다. 그 가운데서도 〈좋아하는 마음 없이〉를 읽고 나서는 한참을 소설의 여운 안에서 서성거렸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 결혼한 여자의 이혼 이야기를 다루는 이 짧은 단편의 문장은 절제되어 우아한 발레리나의 동작처럼 느껴졌다. 투명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겨 이혼하는 과정을 거치는 여자는 우리가 통속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 모습을 보며 이끼처럼 축축하게 마음에 남아있던 감정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었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 연애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사람 만나는 일도 그렇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 시작한 처음 연애 끝에 깨달았다. 좋아한다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좋아하는 마음 없이 만나는 일은 재미없는 일이라는 것을. 두 번째부터는 다시 그러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마음으로 만나 생기는 다른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리메이크한 일본 드라마 ‘아수라처럼’은 성격이 다른 네 자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혼자 사는 큰언니 미타무라 츠나코는 아내가 있는 남자와 연애 중이다. 남자의 아내가 알게 되고 동생이 알게 되어 헤어지지만, 동생의 성화로 끌려가 맞선을 보던 중 뛰쳐나와 그 길로 다시 남자를 만난다. 자신의 감정을 선명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동생에게 츠나코는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부끄럽지 않냐는 동생의 물음에는 ‘누구나 하나는 부끄러운 게 있다’고 답을 한다.
신혼인 둘째 아들부부의 세배를 받으며 덕담을 하던 중 마나님이 이 양반은 뭐가 좋아서 허리 아픈 것까지 나를 따라 하는지 모른다고 농담을 하자, “좋아하니까!”라고 대답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는 이야기의 여운도 오래 남는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도 살 수는 있겠지만,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인해 져야 할 괴로움도 있지만 그럼에도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조금 망한 사랑》에 실린 단편의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