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5월 발행된 잡지《여성》에는 남편과 아내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남편 혹은 아내의 장점에 대해 묻는 짓궂은 질문에 대한 재치 있는 답이 실려 있다. 한복차림의 남편과 아내 사진 옆에 문제의 답변이 실려있는데, 바로 문학평론가 이원조와 그의 아내 이해순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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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남편의 어느 점이 좋은가 _ 이해순
나쁜 것을 쓰라시면 마치 진열장의 상품 늘어놓듯이 많이 쓸 수 있습니다만 하필 좋은 데를 물으시니 매우 난처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음식과 의복의 태없는 것만은 황송하오나 물으심의 좋은 데라 할까요?
나는 내 아내의 어느 점이 좋은가 _ 이원조
물으심에 대답은 하겠습니다만은 속담에 자식 자랑하는 건 반미치광이고 계집 자랑하는 것은 온미치광이라고 하였으니 내가 내 아내의 좋은 데를 공개함으로써 미치광이가 된다는 것은 그다지 반갑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태어 말하라시면 늘 집안을 청결하게 하려는 것이 좋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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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이해순의 대답이 남편보다 한수 위이다. ‘잘난 척하다’란 의미의 ‘태없다’란 말은 이제 안 쓰는 말이지만, 물음에 대한 답에서 여인의 기지와 위트가 빛을 발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해석을 해보면, 부인 이해순은 은근히 남편을 까고 있다. 남편 좋은 점을 말해달라는 요청에, 사실 남편 좋은 점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치미를 떼면서 음식과 옷 타박을 안 하는 게 그나마 자랑에 속한다는 말이니, 우리 남편은 좋은 점이 없다고 하며 은근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험담 중인데 그것이 불편하게 읽히는 게 아니라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지면을 통해 부인에게 완벽하게 까이는 남편 이원조는 시〈광야〉로 유명한 이육사의 동생으로〈시에 나타난 로맨티시즘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하여 1930년대 이름을 날리던 문학평론가이자 신문기자였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가 집에서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는 모양이니 참으로 재미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주인공은 헤어지는 남자 친구에게 이런 험담을 한다.
“더치커피처럼 더디고 차갑고 카페인이 없는 놈!”
소설에서는 더치커피를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여자 친구의 이런 폭언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나오지만, 이런 것을 폭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대에 대한 귀여운 모욕(!)을 담아 날린 이 대사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나의 품격을 지키는 ‘예술적인 험담’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에 대한 불편함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사랑하게 될 것 같다.
“하필 좋은 데를 물으시니 매우 난처한” 부인의 남편인 이원조는 해방 무렵 월북했다. 이후 임화 등과 함께 미 ‘미국간첩’으로 몰려 숙청당하고, 기지가 반짝거리는 왕실가의 여인은 고무공장 노동자로 쫓겨났다고 하니 세월의 격랑에 휩쓸려간 운명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백만 번 산 고양이’란 그림책으로 유명한 사노 요코는 ‘지성’은 다른 사람에게 예술적으로 욕할 때 도움이 되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험담을 안 하고 살면 좋겠지만 꼭 해야 할 험담이라면 지성을 발휘하여 예술적인 험담을 하고 싶다. 예술적인 험담을 할 수 있는 지성을 기르기 위해, 험담의 예술성을 높이기 위해 책을 읽으며 ‘지성’의 근육을 만들고 싶다.
“다른 사람을 욕할 때는 듣는 사람이 “아!” 하고 감탄할 정도로 예술적으로 험담할 수 있는 지성을 기르고 싶어요. 지성이란 그럴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거잖아요.”
《여성》(1936년 5월호)에 실린 이원조와 그의 아내 이해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