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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더블베이스 연주자

〈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

by 디디온

오케스트라에 여성의 자리는 없다. 여자가 매력적이라면 같이 공연할 수 없으며, 매력적이지 않으면 같이 공연하고 싶지 않다. 오케스트라에서 여성 연주자의 수명은 남자만큼 길지 않고 60세 때 기량은 남자의 기량만 못하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이런 말들이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심했다. 그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더블베이스 연주자 오린 오브라이언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자로 있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정규단원으로 발탁되었다.


엘리베이터에 에어컨이 없어서 개인 에어컨을 가지고 다닌다며 부채를 부치는 더블베이스 연주자 오린 오브라이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는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 드물고, 예술가로 살아가는 여성이 희박하던 시절, 특유의 성실과 뚝심으로 자신의 재능을 활짝 꽃 피우며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 멋진 여성 오린 오브라이언의 이야기이다.


존 포드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부부 조지 오브라이언과 마거릿 처칠의 딸인 오린 오브라이언은 부모가 유명 배우라는 조건이 삶에 행복이 되어주지 못했다. 부모는 영화촬영으로 바빠 어린 시절 할머니와 살아야 했고, 너무 자주 이사를 하는 바람에 힘들었다. 대중의 주목받기를 즐기던 그녀의 부모는 급기야 기나긴 이혼 소송을 벌였다. 둘의 이혼과정은 복잡한 문제를 안은 채 시간이 걸렸고, 13세 소녀는 부모의 진흙탕 같은 이혼과정에서 상처받으며 그것에서 도망쳐 베토벤과 사랑에 빠졌다. 도서관에 있는 음악 관련 책을 모조리 읽으며 힘든 시간들을 견뎌냈다.


섬세하고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소녀를 괴로움에서 구해준 것은 더블베이스 연주였다. 베토벤 소타타, 바흐 등 어떤 곡이든 악기를 연주할 때 심리적 해방감을 맛보았다. 괴로운 감정을 표현하고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는 데 음악은 도움을 주었다. 뒤에 있는 게 좋아서, 솔로 연주자가 되고 싶은 야망이 없었기에 선택한 더블베이스는 오린 오브라이언의 인생의 기둥이 되어주었고,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남편 대신 반려자가 되어주었다.


대화를 하고 보살피지 않으면 썩어 말라버리고 소리를 내지 못하는 덩치 큰 악기를 매일 갈고닦는 더블베이스의 전설은 연주할 때 여전히 몰입으로 행복한 표정이다. 모두가 장군일 수는 없고 누군가는 군인이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보다는 자신의 목소리에 충실한 시간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55년간 연주자로 활동한 뒤 2021년 은퇴한 오린 오브라이언은 89세의 나이에도 계속 더블베이스를 가르치고, 콘서트에 가고, 일하는 동안 놓고 있었던 발레를 배우면서 노년의 삶을 충만하게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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