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평전》
동해안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명태는 아주 익숙한 물고기다. 지금은 커피 성지로 유명한 강릉 바닷가 안목은 내가 어릴 때 명태잡이로 성황을 이루던 어촌이었다. 안목 바닷가 부두에 놀러 가면 커다란 그물에 가득 있던 명태를 추려 아줌마들이 고무 대야에 담던 풍경은 일상이었다. 강릉횟집을 하던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그물에서 막 가져온 명태로 만든 생태탕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시절 명태는 너무 흔한 생선이어서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서울에 올라와 지내면서 명태 귀한 것을 알았다. 생태탕은 비쌌고 비싼 생태탕을 시켜도 나오는 것은 신선함이 사라져 살이 꾸덕꾸덕해진 동태탕이었다.
고등어와 꽁치에 비해 지방이 적은 명태는 강렬한 맛은 없었지만 담백하여 질리지 않았다. 싱싱한 생태만 있으면, 육수에 무와 고춧가루, 마늘만으로 맛있는 생태탕이 완성된다. 이제 다시 맛볼 수 없는 그 시절 생태탕의 맛이 지금도 가끔 그립다.
《명태 평전》은 18세기 등장하여 조선시대 가장 많이 유통된 물고기, 그러나 지금은 동해안에서 사라진 ‘명태’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저자 주강현에 따르면 “전쟁・혁명 같은 거대 역사가 아니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일상생활사 측면에서 동해의 명태 소멸은 중요한 사건”이다. 원산 바다에 처음 나타난 이후 한 200여 년 서민의 밥상을 책임지다 사라진 ‘명태’의 소멸과 퇴장은 “오늘날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시대에 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중”이다.
원래 찬 물에 서식하는 명태는 우리나라 북쪽에서 잡히는 물고기여서 ‘북어’라 칭했던 것이 19세기에 이르러 ‘생것을 명태, 말린 것을 북어’로 지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명태는 서민 밥상을 책임지는 친절한 물고기로 때로는 말린 북어가 되어 의례에 사용되었고, 한말에는 현금으로 교환되기도 했다고 하니 명태의 쓰임새가 참으로 넓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태가 우리 생활에 널리 쓰였기에 명태를 지칭하는 명칭 또한 상상 이상이다. 상태에 따라, 잡는 방식에 따라, 잡는 절기에 따라, 크기에 따라 건조방식과 산지에 따라 강태, 염태, 먹태, 깡태, 노가리, 앵태, 막물태 등 40여 개가 넘는 명칭이 있다. ‘영칼로리’라는 그룹이 부른 ‘명태를 빛낸 20가지 이름들’이란 노래가 있는데, 멤버들이《명태 평전》을 읽는다면 20개의 이름을 추가하여 ‘명태를 빛낸 40가지 이름들’로 버전 업하지 않을까.
차가운 물에서 서식하는 한류성 어류인 명태는 지구온난화로 뜨거워진 동해의 수온을 견디지 못하고 멀리 이사를 갔다. 한때 동해안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실시하여 치어를 동해안에 풀어놓기도 했는데, 명태의 소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벌어진 웃지 못할 코미디이다. 그 많은 세금을 그냥 동해 바다에 실어 보낸 셈인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정도 저 멀리 이사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