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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바라볼수록 좋은 것들

내게 좋을 것을 찾는 마음,《유물멍》

by 디디온

뉴스만 들으면 불쾌한 것을 지나 열불이 나고 급기야 분노지수가 치솟는 나날이다. ‘廉(염, 살피다)’ 할 줄 모르고, ‘恥(치, 부끄러워하다)’ 할 줄 모르는, ‘염치’ 없는 사람들이 판을 친다.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을 개돼지로 본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필요하다.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공간에 스며들어, 나대로 괜찮은 시간이 필요”하다. 《유물멍 : 가만히 바라볼수록 좋은 것들》은 어지러운 세상 속에 편안하면서 슬쩍 웃음 짓게 만드는 시간과 공간을 선물해 준다. 가난마저 아끼며 매일 소중하게 쓸고 닦아 내어놓은 백석의 시처럼 《유물멍》은 오래되었고 작고 사소하지만 그 안에 생활의 온기가 담긴 유물을 통해 말을 걸어온다.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션 서비스 ‘아침 행복이 똑똑’에서 뽑은 글로 구성된 《유물멍》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유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담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에 무미건조하게 나열되어 있던 유물은 그것을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교과서적 정의를 넘어 지금 이곳에서의 나의 삶에 작은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의미로 거듭난다.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 유물은 새로운 모습과 의미로 다가온다.〈청자 원숭이모양 먹물 담는 항아리〉는 ‘귀여운 감독님’이 되고, 〈종모양 청동 거울〉은 ‘슈퍼맨 거울’이 된다.


소설 ‘구의 증명’으로 유명한 최진영 작가의 ‘농경문 청동기’에 대한 글도 좋았고, ‘진묘수’에 대한 글은 애잔하였다. 독서실 칸막이에서 시험공부를 하면 그 좁은 자리가 무덤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걱정과 불안이 찾아오는 날에 무령왕릉 진묘수 사진을 찾아보며, 어둠 속 제일 앞에서 왕릉을 지키는 진묘수의 고독을 생각하면 젊은 날 고생을 사서 할 수 있다는 말은 뭉클하다.


‘백자 철화 끈무늬 병’에 관해 쓴 신지민의 글을 읽으면서는 혼자 흐뭇해 웃었다. 며칠 전 신지민이 쓴 《와인》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사랑할 수 있는지, 그토록 사랑하는 것에 대해 모든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저자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는데, 《유물멍》에서 다시 그 이름을 만났다.


책 부록에 그리기 잔치에서 상을 받은 아이들의 그림과 수상소감이 실려 있는데, 아이들의 솔직함과 자유로운 상상력에 깜짝 놀랐다. 제주도 말로 ‘멍’은 ‘~하면서’라는 뜻이다.《유물멍》은 사랑스러운 책이다.


“오래된 물건은 긴 시간을 여행해 우리에게 도착했습니다. 바라볼수록 좋은 것들이 이 책에 담겼습니다... 당신이 어느 계절에 있든 지금 내게 좋은 것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큰맘 먹지 않고도, 떠나지 않고도 여행하는 법이 박물관에 있습니다.”


손잡이 술통.jpg ‘과’ 글자가 있는 손잡이 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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