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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권력의 창녀가 원하는 것

by 디디온

평생 권력의 양지에 기생하며 살아오던 권력의 창녀가 벌거벗은 몸을 내놓고 매스컴을 누비고 있다. 마르케스의 소설〈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 등장하는 창녀처럼 젊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문어 대가리 같은 희마리 없는 머리에, 쪽 째진 눈으로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늙은 창녀는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신이 지금 벌거벗고 춤추는 꼭두각시인 줄도 모른다.


지난 연말 계엄으로 시작된 혼란은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막장 드라마를 써가고 있다. 미국의 두 정치학자가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이런 시기 읽기에 매우 적합한 책이다.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뉴욕타임스〉에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는 칼럼을 쓰게 된 것은 트럼프 당선 직후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이 칼럼들은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최근 우리가 목도하는 지저분한 정치판의 주먹다짐이 이미 미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정치를 이용하는 쌍권이 대통령 윤석열을 급조하였고, 급조된 함량 미달의 정치권력은 마침내 계엄이라는 사고를 치고 쫓겨났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는 추잡한 권력의 이면을 낱낱이 보고 있다. 민주주의는 쿠데타로 무너지기도 하지만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 의해, 국민이 선출한 정치인들에 의해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요즘 매일매일 눈으로 목격하는 중이다.


두 저자는 선거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말하고 있다. 15년간 민주주의를 테마로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한 두 저자는 민주주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신호 3가지를 이렇게 정리한다.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현재 우리나라 민주주의 체제는 붕괴 조짐을 알리는 3가지 신호에 모두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미국에서도 경선으로 선출된 자당의 대선 후보를 당 권력자들이 제멋대로 갈아치우려는 행태가 있었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짜고 치는 그들만의 고스톱 판에 권력을 날로 먹으려 염치없이 끼어든 전직 총리는 자신이 국민들을 상대로 한 기만과 거짓말은 묻어둔 채 상대에게만 약속을 지키라고 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숨을 쉬기 위한 최소한의 가드레일을 이렇게 말한다. “서로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제도적 권리를 당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것”. 최소한의 이 가이드라인이 지켜지는 정치문화가 정착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 기도가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은 분노하면서 분노하는 나를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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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중요한 아이러니는 민주주의 수호가 때로는 민주주의 전복의 명분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이다. 잠재적 독재자는 자신의 반민주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 위기나 자연재해, 특히 전쟁과 폭동, 테러와 같은 안보 위협을 구실로 삼는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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