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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by 디디온

25년의 짧은 생을 마치고 떠난 마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게임 아카이브에 담긴 영상 자료가 영화 속으로 들어온 새로운 형태의 영화이다. 마츠가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간 ‘이벨린’이란 캐릭터로 게임공간에서 했던 말과 행동, 게임 속 인물들과의 사랑과 갈등은 게임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의 소용돌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어 영화에 등장한다. 게임 아카이브와 블로그 속 글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를 통해 관객은 마츠란 한 인간의 욕망과 좌절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타인에게 다가가고 자신의 삶을 채워가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희귀 근육질환 병을 앓는 마츠는 열 살부터 전동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는데 마지막 몇 년은 거의 누운 상태로 지내야 했다. 신체적 제약으로 세상과 접촉할 수 없었던 마츠에게 인터넷은 그저 가상공간이 아니었다. 그에게 가상공간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을 통해 살아있다는 실감과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진짜 삶’의 공간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그가 글을 썼던 블로그 ‘인생 사색(Musings of Life)’에는 마츠의 내면이 솔직하고 위트 있게 담겨 있다. 마츠는 자신이 태어난 1980년대 음악은 꽤 괜찮았지만 패션과 스타일은 엉망이다, 자신이 태어나던 해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것에 대해서는 ‘내가 태어난다고 벽이 무너져야 하는 것 같았다’고 눙친다. 전동 휠체어가 생겼다면서 세발자전거 탄 꼬마가 자신의 휠체어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기꺼이 바꿔주겠다면서, ‘대신 근육질환’도 바꿔야 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놀이공원 갔을 때의 끔찍한 기억을 뭔가 잘못된 장애인 버전의 ‘프리즌 브레이크’ 같았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한참 평범한 다른 아이들과 자신이 얼마나 다른지, 자신이 얼마나 불리한 신체조건을 가졌는지 농담처럼 말하던 마츠가 ‘나만의 탈출구’를 찾았다고 말한다. 단순한 스크린이 아니라고, ‘내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가는 하나의 관문’이라면서.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크게 틀면 마츠는 다른 세상으로 간다. 누워서 손가락을 겨우 움직여 키보드를 두드려 다른 세상에 접속한다.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에서 마츠는 자신의 삶을 제약하는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 건장한 남자가 되어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문제에 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사람이 되어 존재감을 가진다.


마츠가 떠난 뒤 가족들은 새로운 마츠를 만난다. 가상공간의 ‘이벨린’이란 또 하나의 모습으로 살았던 마츠를. ‘마츠가 우정이나 사랑, 남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것을 슬픔으로 안고 살았던 가족은 스스로 선택한 세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간 마츠를 만난다. 아니 이벨린을. 제목으로 들어간 ‘비범한’ 이란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비범하지 않고 평범한 모습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더 좋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2024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감독상 및 관객상 수상작인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어떤 이에게 가상공간은 불가능한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또 다른 세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그는 가족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타인을 받아들인다.


그에게 오래된 인터넷 친구들은 단 한 번 직접 마주하지 못했지만 가족 같았고,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아니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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