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뼈아픈 후회〉
시 〈뼈아픈 후회〉를 처음 읽은 것은 20대 중반이었다. 시를 많이 읽던 시기였고, 황지우 시에 열광했던 독자였다. 1994년 제8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수상작으로《소월시문학상수상작품집》 첫머리에 강은교, 김혜순, 최승호 등의 시들과 함께 시〈뼈아픈 후회〉가 실려 있었다. ‘슬프다 /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 모두 폐허다 /’라는 시 첫 구절은 강렬하였다. 시는 첫 구절을 지나갈수록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뒤틀리고 왜곡되어 격렬하게 내면을 뒤흔드는 고통 속으로 독자를 밀어 넣는다. 누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언어로 무시무시한 것을 시로 이야기하는가. 시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살던 것들의 뼈아픈 지점을 뚫고 있었다. 이건 내 얘기인데, 시인은 나보다도 더 내 이야기의 본질, 내 사랑의 본질, 무서워서 비껴가던 진실을 눈앞에 던져놓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삶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었고, 정착하지 못하던 내면에서 고름이 고여가던 시절이었다. 시간을 투여하면 점수로 나와주던 학창 시절과는 달리 사회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자기 잘난 맛으로 헛바람이 든 청춘을 곱게 보아주지 않았다. 오랫동안 진행되던 연애도, 어찌할 줄 몰랐던 사랑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상하게 변질되어 있었고, 나에게는 그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견디기 어려웠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덜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이십 대 새파란 청춘이 그것을 알 리 만무다. 원하는 것을, 절망하는 지점을 정확히 알기 힘든 나이였다.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더 이상 시를 써서 시를 죽이지 말라”는 송기원의 시구절을 너무도 충실하게 실천했는지 모른다. 시를 읽었던 혼란의 이십 대를 마감하고 서른을 넘어서는 시를 읽지 않았다. 시를 잊고 오랫동안 살았다. 그동안 시인들도 나이를 먹었다.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이사를 간 시인도 있었고, 자기 삶의 고통을 숙주 삼아 아무도 쓰지 못할 시를 쓰던 시인은 정신병동을 오간다는 소문도 들렸다. 시를 읽지 않고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시를 읽었던 시절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시를 읽지 않았던 시절은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시는 원래 고통과 짝을 이루는 것이니까. 삶의 비명을, 고통의 단말마를 시만큼 적절하게 받아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세상이 정신병동 같다는 시인의 비명은 시의 매력적인 자산이다.
이십 대의 나는 당시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시들을 읽으면서 내면의 고통을 나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시들을 읽으며 위안을 삼았다. 시들을 읽으며 간신히 이십 대의 지뢰밭을 건너왔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최근 〈뼈아픈 후회〉를 찾아보다 깜짝 놀랐다. 내가 읽은 1994년〈뼈아픈 후회〉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낯설었다. 시인은 왜 원본을 바꾸었을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1994년 발표된 첫 〈뼈아픈 후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처음 발표했던 시에 비해 수정된 시는 좀 더 설명이 붙어 있지만, 나는 이십 대 처음 읽으면서 매료되었던 〈뼈아픈 후회〉가 더 좋다. 펄펄 끓는 고통이, 참을 수 없는 어둠이 시를 읽던 심장을 때리던 첫 버전이 좋다.〈너를 기다리며〉〈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등 많이 알려진 황지우의 시들도 좋지만 이십 대 나의 고통을 그대로 반사해 주던〈뼈아픈 후회〉가 아직도 나는 좋다. 오십이 넘어서도 나의 ‘뼈아픈 후회’는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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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후회〉_ 최초 버전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