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무화과〉를 처음 읽은 것은 오래전이었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책에서 시 〈무화과〉를 다루었는데, 글쓴이의 애정이 느껴졌다. 시를 찾아 읽어보았지만 문학평론가 김현이 시에게 느낀 것들을 그 시절의 나는 느낄 수 없었다.
최근 생각지도 않게 무화과를 먹을 기회가 생긴 것은 나에게는 시 〈무화과〉가 나를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최근 함께하고 있는 독서 모임 회원 한 분이 무화과를 가져오셔서 맛보고 남은 것을 주기에 얼른 챙겨 왔다. 냉장고에 넣어둔 무화과를 꺼내 먹으며 무화과를 과일로 먹는 것이 처음이란 것을 깨달았다. 내게 무화과는 과일이 아니라 물기 없이 바싹 마른 모습으로 몇번 맥주와 같이 먹었던 안주였다.
무화과 껍질을 벗기고 자르자 석류처럼 붉은 속이 보였다. 붉은 무화과 과육은 붉은 돌기와 줄기가 이루는 모양이 독특하여, 마치 지중해 어디를 떠돌다 이곳으로 여행을 온 듯한 모습이었다. 낯선 모양의 무화과는 맛도 독특하였다. 과일도 아니고 야채도 아닌, 과일과 야채의 중간 어디쯤에 서 있는 맛. 과일의 달콤함을 원하는 사람의 기대는 충족시키지 못하겠지만 나처럼 단 것을 피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맛이었다. 달지 않은 과일이라니, 뭔가 보이쉬한 여자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무화과의 개성 있는 맛을 한참 생각하다가 ‘무화과’란 이름에 대해 찾아보았다. 사과나 배, 포도 같은 다른 과일 이름과는 달리 ‘무화과’라는 이름에는 무화과의 특성이 담겨 있다. 무화의 한자 ‘無花’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의미다. 보통 과일은 꽃이 핀 자리에 맺힌 열매이다. 그런데 꽃이 피지 않는 과일이라니.
“이름이 무화과인 이유는, 겉으로 봐서는 아무리 찾아도 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무화과를 따보면 열매처럼 생겼지만 사실 속의 먹는 부분이 꽃이다. 즉 우리의 눈에 보이는 열매껍질은 사실 꽃받침이며, 내부의 붉은 것이 꽃이다.”
아아, 이 설명을 읽는 순간 오래전 이해 못 했던 시 〈무화과〉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이봐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 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 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
김현은 〈속꽃 핀 열매의 꿈〉이란 글에서 김지하의 시 〈무화과〉에 대해 긴 글을 남겼다. 글에서 는 이 시에 대한 깊은 몰입과 애정이 느껴진다. 시 〈무화과〉는 실패로 좌절한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이며, 겉에 보이는 곳이 아니라 너의 속 깊은 곳에 인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묵묵히 너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무화과〉를 쓴 시인도, 〈무화과〉를 깊이 사랑했던 평론가도 이제는 세상에 없지만, 처음 읽었던 때로부터 30여 년 지나 다시 나를 찾은 시 〈무화과〉가 내 손을 잡아준다. 이봐,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하고 쓰린 듯 털어놓고 싶을 때 시를 읽으면, 시는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해 줄 것인가.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너도 그렇다, 라면서.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 네 열매가 있으니 괜찮다고, 네 인생도 괜찮다고 말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