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퀴어

인간은 설명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해되어야 할 존재이다

by 디디온

나는 ‘이반’이 아니라 ‘일반’이다. ‘이반’이란 말은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의 저자 이름이 ‘이반지하’. ‘이반’은 저자의 성 정체성을 담고 있으며, ‘지하’는 저자의 거주 정체성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저자 ‘이반지하’는 동성애자이며 반지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반지하의 글을 읽으며 그녀의 넘치는 재능과 요상한 자유로움에 끌렸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문과대학에서 똑똑하기로 소문났던 사회학과의 S. 수많은 여자들이 그의 지적 매력에 가슴앓이를 했고 그와 얽힌 연애사가 끊이지 않고 소문이 되어 돌아다녔다. 지적 매력뿐만 아니라 S의 글은 매력적이었고 심지에 샤프한 외모까지 갖추고 있었다. 학교 앞 사회과학서점에서 그를 보고 너무 잘생겨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많은 이의 관심과 사랑과 질투를 받던 S가 당시 신촌 한 사회과학서점에 비치되는 ‘친구사이’란 소식지를 통해 커밍아웃을 했다. 당시 ‘친구사이’란 소식지는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호회지 같은 것이었다. 당시사회 기준으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그런 발간지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대학가 사회과학서점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S를 두고 가슴앓이를 했던 많은 여성 팬들이 그럴 거면 커밍아웃을 미리 좀 할 것이지 사람 애간장 다 태우고 나서 커밍아웃할 게 뭐냐는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했다는 일화도 있을 만큼 그는 매력적이었다.


여자들에게만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 사회학과에서 그는 독보적으로 뛰어나 박사과정을 마치면 교수자리는 당연한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S는 커밍아웃 이후 모교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 소식을 듣고 나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영국에서 1년 정도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영국 인터넷에서 친구를 사귀는 채팅 프로그램을 했었다. 자신의 사진, 사는 지역, 나이, 취미 등을 소개하는 코너 한 구석에 성적정체성을 알리는 칸이 있었는데, 거기에 ‘bi’라고 적은 사람들이 꽤 있는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자유롭고 오픈된 그들의 사회 분위기가 잠시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이웃에 사는 오라버니의 아버지도 커밍아웃은 안 하셨지만 사실상 ‘이반’이시다. 오라버니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 주위에 늘 남자만 있었던 게 그와 연관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남편의 사랑을 독점하고 싶었던 오라버니의 어머니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상황이었겠지만, 두 분은 자녀들을 잘 키우셨고 어머니가 한 10여 년 전 먼저 떠나셨다. 오라버니의 아버지는 그때부터 그동안 숨겨놓았던 자신의 본성대로 충실히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건강하게 자기 삶을 즐기고 계신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청바지를 입고 젊은 애인을 만나 막걸리를 마시며 정치토론을 하고 텃밭에 여러 가지 작물을 키우면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신경의학자로 유명한 올리버 색스도 ‘이반’이었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영국에서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와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그의 다큐멘터리에는 말년에 그의 옆을 지킨 파트너가 함께 나온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은 평화롭고 충만하고 행복해 보인다.


당송팔대가 유종원의 ‘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에는 뛰어난 정원사 곽탁타라는 인물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탁타가 나무를 가꾸면 언제나 잎이 무성하고 열매를 풍성히 맺어 이를 궁금해한 사람이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제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나무가 지닌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그의 본성을 다하도록 돌보아줄 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 자신이 태어날 환경을 선택할 수 없듯이 자신의 기질과 본성 또한 선택할 수 없다. 각자의 본성과 기질은 생명을 받은 자의 고유한 운명인 것이다. 선택할 수 없는 ‘고유한 본성’을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며 차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아닐까.


커밍아웃한 자녀를 둔 엄마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너에게 가는 길〉에서 두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훌륭한 사람은 아닌데 변한 건 분명해요. 스스로 틀을 깰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시작은 아이의 커밍아웃이었는데 결국 제가 성장했습니다.”(‘비비안’의 말)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서로의 인생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인생은 자기 것이니까요”(‘나비’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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