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 도착했다. 강렬한 오월 햇살이 눈앞에서 부서졌다. KTX에서 내려 작은 역사를 빠져나오자 저 멀리서 회색 승복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 승복을 입은 여자가 점점 다가왔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20년 만에 비구니가 된 선배를 다시 만났다.
선배를 처음 만난 건 문과대 종합관 계단 밑에 다락방처럼 자리 잡은 동아리 방에서였다. 교양수업을 들으러 종합관을 들락날락하다 계단 밑에 있는 그 방을 보고 갑자기 문을 열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들었다. 그렇게 문을 성큼 열고 들어갔더니 작은 창문이 눈에 들어왔고, 그 창문 앞에 파마머리를 한 여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피우는 여자를 처음 보았다. 담배 피우는 여자의 모습은 굉장히 강렬하여 지워지지 않는 사진처럼 머릿속에 인화되었다.
심리학을 전공하던 선배를 그렇게 만났다. 마산 사투리가 섹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선배의 억양은 독특했고, 도발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술을 마시면서 늘 담배를 피웠고 웃는 모습에도 어떤 그늘이 따라왔었는데 말을 똑 부러지게 잘하기도 했다.
졸업하고 다들 정신없이 사회생활을 하던 20대 중반 그 선배가 비구니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진실을 알 수는 없었다. 선배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대학시절 친구로 소설가가 된 K를 통해서다. 불교신자가 된 K가 어느 법회에서 선배를 만났다는 것이다. 밀양의 절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살아가는 일은 늘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일이었다. 쓸쓸한 곳에서 선배가 생각났다. K에게 이메일 주소를 받아 연락을 했다. 하필 그때 선배가 밀양에 있다니, 참 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창동의 영화 ‘밀양’을 본 이후 ‘밀양’ 하면 전도연의 절규가 떠올랐지만, 밀양은 아담한 곳이었다. 조용한 여자 같은 도시였다. 살아가면서 터져 나오는 절규를 무화시켜 줄 햇빛 한 줌이 그곳에 비밀처럼 감추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는 비구니로 살아가는 선배가 운영(?)하는 절은 깊은 산에 자리 잡고 있어 해가 지자 짙은 어둠이 온몸을 감아오는 것 같아 무서웠다. 나는 정작 묻고 싶었던 것들은 물을 수 없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누구도 대답해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고 했던가. 부처님 오신 날 걸어둔 연등 아래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산다는 일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속을 걸어가는 일이다.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꿈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다
《금강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