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점반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by 디디온

지난해 9월 대전의 한 도서관으로 강연을 가는 엄혜숙 선배를 따라 몇몇이 함께 나들이 갔다. 점심 무렵 도착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엄선배가 강연을 하는 동안 우리들은 대전의 명소로 꼽히는 송시열의 별당 ‘남간정사’와 송준길의 별당 동춘당, 현재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사용되는 옛 충남도청을 둘러보았다.


강연이 끝난 뒤 대전에 사는 선배의 지인들과 함께 구도심에 있는 오래된 음식점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튀김소보로빵으로 유명한 성심당이 있는 대전 구도심은 예전은 번화했겠지만 지금은 쇠락해 가는 느낌이어서 갈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술자리는 화기애애했고 삼겹살을 모두 구워 먹고 주문한 술을 모조리 비웠지만 왠지 자리를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웠던 차에 한 분이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에 가서 차를 한잔 마시자고 이야기하셨다. 듣고 싶은 말이었기에 모두 함께 어두운 밤 서점을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대전 문화동 골목길에 위치한 그림책방 ‘넉점반’이었다. ‘넉점반’ 뜻이 무엇이냐고 묻자 ‘작은 별’ ‘옹달샘’ ‘비행기’ 등 동요를 작사한 윤석중의 ‘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점으로 들어가는 문 입구에 동화책 ‘넉점반’에 나오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에 맞추어 나오는 그림이다. 넓은 이마, 까만 검정 고무신에 빨간 치마를 입고 앉아 개미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아기’의 모습.


그림책 ‘넉점반’은 윤석중의 시도 좋지만 그림의 매력 또한 시 못지않다. 순진무구함과 귀여움이 철철 넘쳐나는 ‘아기’의 모습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나 싶다.


그림책방 ‘넉점반’의 주인장은 일본 그림책 마을 여행을 갔다가 깊은 산속에 있는 그림책방에서 그림책 ‘넉점반’을 만났다고 한다. 그림책 ‘넉점반’을 만나고 그림책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그의 인생은 큰 변화가 생겼다고. 바로 세상의 번잡한 시간을 잊고 책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책방을 만든 것이다.


그날 주인은 우리에게〈달 밝은 밤〉이란 그림동화를 직접 읽어주며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그림동화가 이런 매력이 있는지 깜짝 놀란 시간이었다. 그림책에 대해 ‘더없이 넓고 깊고 오묘한 세계’라고 말하는 정신분석가 가와이 하야오는《그림책의 힘》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 마음의 심층과 그림책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임상심리학을 하는 동료들 중에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인간의 심층에는 사실로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림책은 영혼의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일지도 모릅니다.”


‘넉점반’의 주인공인 귀여운 ‘아기’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아기’의 모습이 누군가와 무척 닮았다는 것을 알았다. 권정생에 대한 글도 썼고 좋은 그림책을 소개하는 일을 다방면에 걸쳐서 하고 있는 엄혜숙 선배. 엄선배는 아직도 그려 넣어야 할 것이 많은 깨끗한 도화지 같은 사람으로, 나이 들수록 늘어가는 호기심과 발랄한 엉뚱함으로 늘 우리들을 즐겁게 해 준다.


시간을 알아오라는 엄마 심부름을 갔다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것을 잊고 4시 반이 훨씬 지난 시간에 돌아와서는 ‘시방 넉점반’이라고 시치미 뚝 떼는 귀여운 아기는 내가 그동안 보아온 엄선배와 꼭 닮아 있다.



넉점반2.jpg 그림책방 ‘넉점반’에 왔음을 알리는 문패



넉점반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점반이다.”


“넉점반, 넉점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점반, 넉점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점반, 넉점반”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점반, 넉점반”

아기는 오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점반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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