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일한 한국인 철학교수 이야기
독일어로 ‘산’을 무엇이라고 말하느냐던 물음에 차마 모른다는 답은 할 수 없어, 독일엔 ‘산’이 없다고 대답했던 전설적인 후일담을 남긴 독문학과 후배가 뒤셀도르프 대학 철학 교수가 되어 돌아왔다. 지난 토요일 인사동에서 20년 만에 만난 후배 이야기이다.
대학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후배는 그 무렵 전쟁 같은 부모의 이혼소송으로 인해 몹시 상처받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는 학과 공부는 뒤로 하고 황지우의 시나 이창동의 ‘소지’ 등의 소설을 읽으며 매일 학교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상처받은 마음을 달랬다. 큰 키에 락커처럼 긴 생머리, 어두운 얼굴로 줄담배를 피우던 후배는 당시 소주 3병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여장부였다. 대학생활 내내 부모님의 일은 후배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그럴수록 그녀의 주량은 점점 더 세져만 갔다.
대학원에서 독문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배는 독일로 유학을 갔다. 독일로 떠나기 전 나는 그녀와 남해로 여행을 다녀왔다. 독일로 떠난 그해 마지막 날에 독일에서 전화가 왔다. 너무 외롭고 그립다고. 이후 후배는 1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독일인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서 박사 후 과정까지 이수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몇 년 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급히 귀국했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소식으로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후배를 지난 토요일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난 후배는 변해 있었고, 여전히 똑같았다. 줄담배에 말술이던 그녀는 화장을 하고 파마 한 머리에 연신 애교 있는 웃음을 터트리는 ‘낯선 여자’가 되어 돌아왔다. 담배는 물론이고 술도 끊고 채식주의자가 되어 돌아온 후배는 낯설었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십 분이 지나자 우리는 다시 스무 살 철없던 시절로 돌아갔다.
그녀가 뒤셀도르프 대학 철학 교수라는 건, 마르크스를 전공한 독일 교수 자격으로 학회 세미나 발표를 위해 한국에 왔다는 건, 그녀가 독일에서 유일한 한국인 철학교수라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계급장 같은 건, 우리가 스무 살 때 만난 오랜 친구 같은 선후배 사이라는 사실과는 무관하였다.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면 그 옛날 독일어 ‘Berg’를 몰라 독일에는 ‘산’이 없다고 한 그녀가 독일어로 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올라와 있다. 독일 뒤셀도르프 철학교수가 된 그녀에게 이제 와서 독일어로 ‘산’이 ‘Berg’라는 것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독일어는 거의 모국어 같은 언어가 되었고, 독일에서 교수 정년은 67세니 그 이후 우리는 다시 한국에서 옛날처럼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나면 헤어지게 마련이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 것이다.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는 김수영의 시 구절은 삶이 가지는 본질을 꿰뚫고 있다. 17년간 독일에서 공부를 한 끝에 먼 이국땅에서 자신의 자리를 일구어 낸 후배가 독일어로 쓴 책의 번역본을 다음 주에 꼭 한번 시간 내어 읽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