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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Jun 28. 2023

힘이 길을 만들고 길은 힘을 만든다

김훈의《하얼빈》

바깥은 봄

어제 산책 나간 길에 화단에 하얀 매화꽃이 피어난 걸 보았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아직 봄을 맞을 준비가 안 된 것처럼 보이는데 제일 먼저 봄을 맞으러 나온 매화. 이제 곧 산수유 꽃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년 이맘때 산수유를 볼 때면 사진가 강운구 선생님의 글이 생각납니다. 강운구 선생님은 자신의 책 《시간의 빛》 에 실린 ‘산수유 꽃무리’라는 글에서, 산수유에 관한 김훈의 글을 읽고도 산수유에 대해 다시 쓰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하면서 “바보가 된 김에 말하자면 산수유 꽃무리는 이 땅이 이른 봄에 꾸는 꿈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산수유가 피어날 때면 ‘산수유’를 두고 쓰여진 두 분의 이 글들을 떠올리며 혼자 슬며시 웃어봅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안중근

이제 《하얼빈》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책을 다 읽은 후 하드커버 책표지를 덮으며 이 두 날짜를 되뇌어 보았습니다.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에 총을 쏜 날과 안중근이 머나먼 중국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날.     

 

이 두 개의 날짜를 말하고 적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에는 무거운 바람이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이 무겁고도 허허로운 느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글을 통해 느껴지는 인간 삶의 비장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작가는 왜 이토록 참담한 것에 시선을 두는 것인지. 안중근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과 낮게 땅으로 깔려나가는 것처럼 울리는 문장들 사이를 헤메이면서 그런 생각들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이제껏 안중근에 관한 소설이나 안중근에 관한 글들은 식민지 시대 민족의 원흉을 저격한 영웅으로 묘사한 것들이었습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이것이 보편적인 안중근에 대한 이미지일 것입니다. 하지만《하얼빈》의 ‘안중근’은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서 파격적으로 다가옵니다. 《하얼빈》에는 고뇌하고 흔들리고 갈등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는 청년 안중근이 있을 뿐입니다. 열정과 분노 한켠에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인간 안중근의 모습이 있을 뿐입니다.     


안중근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계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안중근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고 쓰고자 하신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하였습니다. 세상의 불의와 모순에 맨몸으로 맞선 한 청년의 모습에서 선생님 자신의 내면의 한 부분을 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물들의 내면에 대한 문장에서 작가의 깊은 내면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얼빈》의 외형은 안중근에 대한 이야기지만 소설의 뜨끈뜨끈한 몸뚱이는 청년 김훈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요. 그토록 섬세하게 흔들리는 내면은 바로 작가 자신의 것이 아니었을까요.     


소설 끝에 낯설게 자리 잡은 ‘후기’

소설이 끝난 다음 ‘후기·주석’이란 제목의 장이 나오는 구조 또한 어떤 소설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구조였습니다. ‘후기’ 첫 부분에서 작가가 말하는 ‘소설이 감당하지 못한 일들’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궁금해하면셔 읽어가다 안준생, 안현생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안준생, 안중근의 차남. 아버지가 집을 떠날 때 ‘6개월 된 태아’였고, 아버지가 처형될 때 ‘약 30개월 된 아기’였다는 부분을 읽고 목이 메입니다. 아버지가 처형되고 가족들과 러시아 극동지대와 북만주 일대를 옮겨다니며 살아야 했던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 보지 않았어도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39년 한국에 온 안준생은 어인 연고로 총독부 관리들과 같이 이토 위패에 분향하고서 ‘안중근이 처형 직전에 자신의 행위가 오해에서 비롯된 폭거임을 인정했다’는 말을 했을까요. 연유가 어떻든 간에 안준생의 그 말은 저를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현생, 안중근의 장녀. 소설 속에서 안중근의 부인 김아려가 두 아들을 데리고 우리나라를 떠날 때 여덟 살이었던 소녀. 안현생은 안씨 집안에서 서울 명동성당의 천주교 수녀원에 맡기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김아려는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는 일’로 받아들였고, ‘안현생은 발버둥치면서 울었다.’고 쓰셨습니다.  ‘안정근이 울면서 발버둥치는 안현생을 서울 명동성당 수녀원에 데려다주었다’. 김아려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소설에서 가족이 하얼빈에 하루 더 일찍 도착해 만났더라면 아마 이토에 대한 거사가 이루어지기 힘들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후기’에서 전해주는 안중근 가족의 일들이 무겁게 마음을 칩니다.     


다시 후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안현생에 대한 설명에는 1914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살고 있던 가족과 합류하여 1919년 상해에 정착했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안준생이 한국을 방문하여 이토에 분향한 지 일 년 오 개월 후인 1941년 3월 26일 안현생은 남편과 서울에 와서 박문사를 참배했다고 나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 ‘이등박문(伊藤博文)’에서 따온 이름으로 붙여진 박문사를. ‘3월 26’일이라니요. 3월 26일은 안중근이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날이 아니던가요. 목이 메입니다. 신문에 보도된 안현생의 말, ‘아버지의 죄를 사죄한다.’ 아버지와 아버지가 한 일의 의미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 참으로 슬픈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집 책꽂이에는 선생님이 사인해주신 소설 《하얼빈》이 꽂혀 있습니다. 오래전 호수공원에서 산책하시던 선생님을 우연히 뵌 적이 있습니다. 다시 우연히 호수공원에서 마주친다면 《하얼빈》을 만나게 해주셔서, 김훈의 글을 읽게 해주셔서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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