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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Aug 11. 2023

아버지 손학규

인생은 싸움이 아니지만 승리의 기술이 있다면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100만 부가 넘게 판매된 《아몬드》는 알렉시티미아(감정표현 불능증)란 정서 장애를 가진 16세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중앙일간지에서 이 책에 관한 기사를 읽고 얼른 도서관을 향했다. 작가의 아버지가 정치인 손학규라는 사실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몬드’란 제목과 표지를 보고 ‘아몬드’가 먹는 견과류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책을 읽고 나자 궁금함이 해소되었다. 소설 제목 ‘아몬드’는 뇌의 편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소설 전체 이야기의 줄기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장애’와 관련이 깊다.    

  

아몬드는 우리 뇌의 편도체를 이르는 말이다. 뇌의 편도체가 아몬드 모양이어서 그렇게 부르는데, 아몬드가 나지 않는 동양에서는 아몬드가 복숭아씨와 비슷하다고 하여 ‘편도’(편도에 해당하는 한자어 ‘扁桃’는 ‘평평한 복숭아’란 의미이다)라고 부른다. 목구멍에 있는 아몬드처럼 생긴 조직은 편도선, 뇌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조직은 편도체인 것이다.    

 

뇌의 편도체는 감정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감각을 느껴 감정을 만들고 이 감정을 기억으로 남기기 때문에 감정의 중추에 해당한다고 한다. 편도체가 고장나거나 파괴되면 타인의 화난 감정이나 두려운 표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 좋을 것 같다고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면 좋을 것 같다고 잠깐 생각하다, 과연 좋을까 의문이 들었다. ‘감정’은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관적 진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삶은 그냥 사막 같은 것이 아닐까.    

 

소설 ‘아몬드’는 새로웠고 좋았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 책이 밀리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이 증명해준다. 몇몇 지인에게 추천도 하고 선물도 하였다. 그런데 이 소설이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소설 끝에 나오는 작가의 말 때문이었다. 바로 이 구절.     


“아낌없는 사랑으로 결핍 없는 내면을 선물해 주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한때는 내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라난 것이 작가가 될 깜냥이 못 되는 거라 생각해 부끄러웠던 시절도 있다. 세월을 거치면서 그 생각은 바뀌었다. 평탄한 성장기 속에서 받는 응원과 사랑, 무조건적인 지지가 몹시 드물고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것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세상을 겁 없이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는지, 부모가 되고서야 깨닫는다.”      


정치인 손학규에 대해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어느 총선인가 분당지역에서 출마하여 당선된 손학규가 크게 조명되었던 뉴스도 생각나고, 정치를 접고 시골로 내려가 있던 모습을 보여주던 뉴스도 생각나고, 최근 대선에 나왔다 초라하게 사라진 모습도 기억난다. 잘 알지 못하지만 손학규의 딸인 작가의 이 글을 통해 정치인 손학규가 아니라 ‘아버지 손학규’의 팬이 되었다.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보낸, 당연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좋은 아버지 손학규의 ‘팬’.    

 

그동안 읽었던 책의 작가 후기 가운데 이것이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었다고 하면 내가 너무 부러워하는 것인가. ‘평탄한 성장기’를 거치며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은 사람의 내면이 궁금하여진다.      


***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속에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다가오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 

_카프카가 ‘문학적 전복’에 관해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    

 

* 인생은 싸움이 아니지만 만약 승리의 기술 같은 게 있다면 그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_ 이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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