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의 ‘순자의 가을’이란 노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란 노래는 바로 ‘순자의 가을’을 리메이크한 곡이다. 방미는 심수봉이 부른 ‘순자의 가을’이란 노래를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로 다시 불러 히트를 시켰으며 1983년 KBS가요대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원곡 노래 가사 가운데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란 구절이 나오는데 그것을 새로운 노래제목으로 다시 세상에 나와 사랑받은 것이다.
‘순자의 가을’이란 노래 제목은 다소 촌스럽지만 촌스러운 만큼 이 노래의 화자인 ‘순자’의 순정적인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어 나는 ‘순자의 가을’이란 노래 제목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순자의 가을’이 원래 곡 이름으로 알려지지 못하고 발표된 지 한참 지나 다른 제목의 노래로 발표된 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바로 독재정권의 여주인이었던 ‘이순자’ 때문이다. 1980년 10월 나온 심수봉의 3집 앨범에 실려 있는 ‘순자의 가을’은 당시 최고 권력자의 부인 이름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우리나라 80년대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 노래가 많았다. 송창식의 ‘고래사냥’, 김추자 ‘거짓말이야’, 양희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한대수 ‘행복의 나라로’를 비롯하여 심지어 신중현의 ‘미인’까지. 이쯤 되면 금지곡의 기준은 ‘명곡’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이다. 예전에는 이런 금지곡들만 모아놓은 노래 테이프를 따로 팔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금지곡 모음’이란 콘셉트의 노래가 팔리는 나라에서 살았다는 웃음이 나온다.
청바지에 기타를 치며 폼나는 포크와 록 음악이 주를 이루던 대학가요제에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흰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트로트 풍의 ‘그때 그 사람’을 천연덕스럽게 부르던 심수봉. 불멸의 히트곡 ‘사랑밖엔 난 몰라’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수봉의 노래를 듣고 내 이야기가 바로 저 노래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무척 많을 것이다.
국악계 전설로 꼽히는 명창 심매향이 심수봉의 고모이고 할아버지 심정순은 판소리 거장으로 심수봉 집안은 서산에서 판소리로 유명했던 가문이었다. 대중의 감성을 더할 수 없이 노래로 잘 옮겨놓은 심수봉의 음악적 재능에는 바로 이런 집안의 DNA가 있는 것이다.
‘음악은 하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하는 심수봉의 노래는 ‘사랑’에 관한 여자의 정서를 기막히게 담아내고 있다. 이성복은 ‘세월에 대하여’란 시에서 연애에 실패할 때마다 ‘유행가가 얼마만큼 절실한지 알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심수봉의 노래만큼 ‘연애’에 관한 마음을 절실하고 절묘하게 담고 있는 유행가가 있을까.
심수봉의 ‘순자의 가을’이 방미가 부른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보다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사랑밖에는 모를 것 같은’ 순자가 나오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자처럼 속삭이듯 애절하게 부르는 심수봉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가을에는 순자처럼 순정적인 마음을 갖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순자의 가을’을 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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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음악과 같다고요. 화음 앞에 불협화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거라고요... 그런데 오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살아내고 있는 이 순간의 삶이 화음인지 불협화음인지... 나는 화음 같은데, 사람들은 불협화음으로 볼 것 같아요.
_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