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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Apr 19. 2023

살고 싶다는 농담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 서가를 둘러보다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는 제목을 보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니. ‘살고 싶다’는 말을 ‘농담’과 연결하다니.

책을 대출해 집에 와 표지에 실린 글을 보다 또 한번 놀랐다.


“여러분의 고통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고통이란 계량화되지 않고 비교할 수 없으며

천 명에게 천 가지의 천정과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적어도 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책을 펼쳐 들고 읽으며 계속 놀랐다. 정확하게 본질을 꿰뚫는 예리함으로 가득한 글들. 책의 모든 글이 좋았지만 그 가운데서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와 ‘리처드 닉슨’에 관한 글을 읽고서는 한참을 놀란 가슴을 가라앉혀야 했다.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에 관해 이보다 더 정확하고 예리하게 분석하는 글을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글은 현실을 벗어나는 그 어떤 감상이나 환상을 용납하지 않았다.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길뿐. 감정을 멀리 떨어뜨려놓은 채 저자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그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스런 짐들의 흔적이 보였다.


자신을 찾아온 불행을 이기는 데 최소한의 공간적·시간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며, 자기객관화가 가능하도록 마음의 여유를 회복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 저자에게 그것은 ‘상처는 상처이고 인생은 인생이라는 선언’이었다고 하는 말.     


나에게도 무너지지 않고 나를 견디게 해주는 그러한 선언 같은 글이 있다. 지난여름 서점을 하는 후배가 선물해준 《케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환자가 전문 의료진을 아무리 힘들게 해도 언제나 환자의 고통이 의사의 고통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 가장 깊은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과 마주 앉아 있다... 경계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이 여성처럼 정신적 고통에 처해 있을 수도 있다. 이 끔찍한 경험 안에서 그들과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 환자의 고통과 치유에 대한 갈망이 이 관계가 유지되는 ‘레종 데트르(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 안에서 의사인 나의 욕구와 상처는 스스로 인식하고 극복해야 한다. 대치 상황이 아무리 극단적으로 흘러도 나의 분노와 좌절은 나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환자의 행동이 내게 주는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 적대감과 울분까지도 흡수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상호적인 관계라는 점이다. 따라서 상대의 어떤 반응도 관계가 이어지게 하는 노력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글이 있어 읽을 수 있는 한 나는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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