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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May 20. 2024

마지막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국내 한 종합병원 종양내과에서 일하는 전문의가 쓴 글들이 좋아 열심히 읽다가 가슴이 찡한 순간이 있었다. 바로 그의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였다. 글쓴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순간을 가져다주는 글을 좋아한다. 캐나다에서 말기 환자들의 조력 사망을 돕는 일을 하는 의사가 쓴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도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많은 책이다.     

 

책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캐나다에서 조력 사망이 법적으로 허용되기까지의 과정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 저자가 조력 사망을 도와준 사람들과의 첫 만남부터 마지막 순간의 장면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글쓴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관계, 아버지의 죽음 당시의 상황과 그 속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 신경계통의 병으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딸로서의 심정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말해준다.     


예상하지 못했던 병과의 싸움 끝에 인간의로서의 자존을 지킬 수 있는 세상과의 작별을 선택한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는 예사롭지 않다. 각각의 사정과 각각의 반응이 있고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하지만, 그것 또한 삶의 일부라는 점에서는 같다. 책을 읽으면서 죽음이 어떻게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목격한 기분이다.   

  

삶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이야기는 모두 특별하고 뭉클하였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케이스는 ‘케이티’라는 여성 이야기였다. 90세인 케이티는 심장의 문제로 고통받았는데 마지막 임종 자리에 가족 열두 명이 참석했다. 작별인사가 끝나고 조력사망 단계가 시작되고 수면을 유도하는 약물이 주입되어 무거운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느닷없이 케이티의 막내딸이 “딸기잼” 하고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가 “크리스마스 케이크” 그리고 이어 “모두를 위한 울 니트 양말” “예고도 없이 손주들 데려가기” “토마토 통조림 만들기” 등등 케이티가 죽어가는 8분 여 동안 그가 가족에게 해주었던 것들이 계속 이어졌다. 임종 자리에서 그곳에 참석한 이들이 말한 짧은 말들은 케이티에 대해 기억이었고, 케이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리는 것들이었다. 가족들에 대해 넘치는 사랑을 주었던 고인을 말해주는 헌사들이었다. 살아생전 한 사람이 베풀어준 사랑에 대한 기억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이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런 마지막 순간이라면 멋진 삶의 완성이 아닌가. 그리고 삶의 멋진 완성은 살아가는 동안 그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았는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저자는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이별 장면에서,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서로 용서하는 ‘관계의 풍부함’을 보았다고 말한다.     


“내가 인생에서 좀 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원하면서도 현재의 피상적인 관계를 게으르게 그냥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런 예들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만들라고 나를 자극했다. 우리는 서로를 진정으로 아는 것을, 자신을 알리는 것을 왜 그토록 두려워하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자신의 삶의 마지막 날을 아는 사람들은 더 삶에 집중하고,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남은 시간을 오히려 더 의미 있게 사용했다고 한다. 인생의 마침표인 죽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극심한 병의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안도감과 평화를 주는 측면도 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은 삶이라는 긴 여행의 마침표이다. 마지막 순간 나는 내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 한순간도 허투루 살 수 없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이다.          


***     


“나 자신이 엄마가 된 후 나는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것보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더 도움이 되어주기로, 어린 시절의 나에게 부족했던 안정감과 안전감을 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머니에 대해, 어머니와 나의 관계에 대해 여러 단계로 더 깊은 통찰과 이해를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의 부모 경험을 통해, 자녀와의 양방향 의사소통이 늘 쉽지는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안에는 10대 시절 어머니와의 거리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느끼는 연약한 부분이 여전히 있었다.... 내가 MAiD(조력 사망을 돕는 것)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걸 알았다. 아마 그때가 조력 사망 일이 인생을, 나의 인생과 어머니의 인생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었음을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일 것이다. 나는 어머니보다 증상이 훨씬 덜 심각한데도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사람들도 만났고, 계속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하는 노력에 새삼 존경심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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