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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Jun 29. 2024

뽀찌

곁에 있어주는 사람에 관해

며칠 전 저녁을 먹고 산책하러 나갔다가 근처 사는 언니를 만났는데, 남편 강의료를 ‘뽀찌’ 받았다고 즐거워했다. ‘뽀찌’가 뭐냐고 물었더니, ‘공돈 생기면 나눠 갖는 것’이라고 한다. 근처에 살아 멀리 사는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다 보니 이제는 거의 ‘준가족’이 되어버린 언니네 집 이야기는 만날 때마다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집안의 경제상황에 따라 밝았다 흐려지는 애정전선부터 시작하여 아들의 연애 이야기와 40년째 고쳐지지 않는 서로의 고약한 버릇까지.     


영화 ‘오키쿠와 세계’에서 몰락하여 세상 뒤켠으로 물러난 전직 사무라이는 아직 새파란 젊은이에게 “아내를 잃고 깨달았지,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최고”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는 말을 꼭 해주라고 당부한다. 이제 중학교에 들어간 딸을 키우는 후배는 언젠가 ‘가장 좋은 엄마’는 ‘살아있는 엄마’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을 들었는데 정말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곁에 있어주는 엄마가 진짜 엄마인 것이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아내인 것이다. 그런데 곁에 있을 때는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한 것을 모르는 법이다.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부재한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이런 불상사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얼마 전 본 영화 ‘비밀의 언덕’도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열두 살 주인공은 ‘가족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게으른 백수 아빠가 싫고, 돈만 밝히는 드센 젓갈장수 엄마가 싫고, 앞에서는 말을  잘 듣는 척하지만 늘 엄마아빠를 흉보는 오빠가 싫다. 그렇지만 게으른 백수 아빠가 늘 그런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아빠는 딸을 위해 게를 발라주기도 하고, 가끔 엄마는 딸이 쓴 글이 실린 신문지를 소중하게 오려 간직해놓기도 한다. 서로 알뜰하게 사랑하고 이해해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반대도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서운한 마음도 모두 함께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버무려진 것이 가족이다. 보통의 가족의 모습이다. ‘내다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는 기타노 다케시 말처럼 하고 싶을 때도 있고, 그러다 또 잊어버리고 같이 밥을 먹으며 그렇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가족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뽀찌’는 도박장에서 쓰는 말이다. 내기나 도박에서 많은 돈을 딴 사람이 딴 돈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 말로는 ‘개평’이라고 한다. 만화 ‘타짜’에는 ‘개평을 안 주면 죽는 수가 있고 너무 적게 주면 수갑을 차는 수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니 ‘뽀찌’를 잘 써야 인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보다.      

 

‘뽀찌’라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을 알려준 언니도 이제는 가족처럼 여겨진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니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최고이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가족이니까. 가족은 곁에 있어주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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