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뽀찌

곁에 있어주는 사람에 관해

by 디디온

며칠 전 저녁을 먹고 산책하러 나갔다가 근처 사는 언니를 만났는데, 남편 강의료를 ‘뽀찌’ 받았다고 즐거워했다. ‘뽀찌’가 뭐냐고 물었더니, ‘공돈 생기면 나눠 갖는 것’이란다. 근처에 살아 멀리 사는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다 보니 이제는 거의 ‘준가족’이 되어버린 언니네 집 이야기는 만날 때마다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집안의 경제상황에 따라 밝았다 흐려지는 애정전선부터 시작하여 아들의 연애 이야기와 40년째 고쳐지지 않는 서로의 고약한 버릇까지.


영화 ‘오키쿠와 세계’에서 몰락하여 세상 뒤켠으로 물러난 전직 사무라이는 아직 새파란 젊은이에게 “아내를 잃고 깨달았지,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최고”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는 말을 꼭 해주라고 당부한다. 이제 중학교에 들어간 딸을 키우는 후배에 따르면 ‘가장 좋은 엄마’는 ‘살아있는 엄마’이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진짜 엄마인 것이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진짜 가족인 것이다.

얼마 전 본 드라마 ‘은중과 상연’도 가족을 생각해보게 한다. 초등학교 때 만나 마흔 넘어서야 관계의 매듭을 짓는 은중과 상연. 기나긴 인연 속에서 두 친구의 가족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아빠 없이 가난하게 살지만 엄마에게 사랑받는 은중과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잣집 딸이지만 엄마의 냉대를 받는 상연. 결핍이 주는 커다란 상처가 상연을 따라다니며 깊은 그림자를 남긴다. 사랑받지 못한 상연은 사랑을 집착으로 착각하며 시행착오를 겪는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뽀찌’는 도박장에서 쓰는 말이다. 내기나 도박에서 많은 돈을 딴 사람이 딴 돈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 말로는 ‘개평’이다. 만화 ‘타짜’에는 ‘개평을 안 주면 죽는 수가 있고 너무 적게 주면 수갑을 차는 수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뽀찌’를 잘 써야 인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보다.

‘뽀찌’라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을 알려준 언니도 이제는 가족처럼 여겨진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니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최고이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가족이니까. 가족은 곁에 있어주는 사람인 것이다.

keyword
이전 03화밴댕이는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