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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Jun 22. 2024

모든 것이 지나간다

밀면 먹으며 상중(喪中)인 친구를 생각하다

부산 장례식에 가 조문을 한 후 밀면을 먹으러 가려던 계획이 틀어지고 비 오는 토요일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밀면집에서 비빔밀면을 먹으며 오늘 어머니의 입관이 끝나고 난 뒤 친구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해 보았다. 이번 달에는 부고가 아파트 관리고지서보다 많이 날아들었다. 언젠가 나의 죽음도 그런 형태로 누군가에게  전달될 터이지만, 그런 생각은 아직 하지 않기로 한다.   

  

밀면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첫 번째는 일산 현대백화점 부근에 있는 부산밀면 전문점에서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두 번째는 대전 밀면집이었는데 역시 맛이 없어서, 냉면보다 싸구려라 밀면은 원래 맛이 없는 음식인 줄 알았다. 그런 선입견은 오늘 밀면집에서 깨어졌다.     


귀해서 비싼 메밀로 만든 냉면과 달리 밀면은 밀가루로 만든다. 그래서 값도 싸고 양도 푸짐하다. 고등학교 때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었던 잊을 수 없이 맛있던 쫄면과도 비슷하다. 고등학교 시절은 무엇이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능력’ 혹은 ‘재능’이 있던 시절이었다. 맛있는 것을 알아보는 것도 ‘재능’이지만, 맛있게 먹을 줄 아는 것도 ‘재능’이다. 어쩌면 맛의 기준이 낮아 웬만하면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재능’이 훨씬 더 행복을 주는 재능일지도 모른다.      


텔레비전 먹방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던 밀면 집은 비 오는 날이건만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사이드 메뉴로 시킨 만두도 맛있고 모든 게 만족스러웠지만, 냉면보다 훨씬 싼 가격에 냉면을 모방한 밀면이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오늘의 소득이었다.     


자연스러운 단맛이 적절하게 우러나는 소스로 비빈 밀면을 먹으며 면이 식도를 지나 위장으로 가는 동안 다시 친구의 눈물을 생각한다. 이제 망육(望六)을 바라보는 배 나온 아저씨가 철없던 시절 매일 같이 술 마시고 장난치던 멀리 있는 여자동기에게 어머니가 위독하다면서 울면서 전화를 했다니, 마음이 짠해진다.      


아주 오래전에도 그는 센 척하며 말이 거칠었지만 술을 마시면 자주 울었다. 자주 울었는데 아무도 눈물을 닦아주지 않아 자신의 눈물은 자신이 알아서 닦았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멀리 떠난 어머니의 DNA의 일부는 60억 개가 넘는 친구의 세포들 속에 남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일 발인을 끝내고 나서는 더 이상 그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울더라도 이제는 정말이지 혼자서 울고 혼자서 눈물을 훔쳐야 한다. 그의 몫으로 던져진 슬픔에 대해서는 더 이상 위로할 수 없다. 스스로 위로하면서 그 슬픔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슬픔과 같이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     


부산한 밀면 집을 나와 일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북한산 산중턱을 흘러가는 구름도 보이고, 비를 맞아 초롱초롱한 연둣빛 나뭇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맑은 연두 잎들이라면 다음 생에 한 번 더 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


나도 여기 있을 뿐이다 / 울릉 도동항 바라보며 / 있을 뿐이다 / 누가 이야기했는가 / 이 많은 세상의 삶에 대해서 / 단편소설도 쓰고 / 장편 소설도 쓰고 / 어떤 이는 수기도 썼는데 / 나는 그냥 여기 있을 뿐이다 / 맑은 날에는 멀리 독도까지 보인다는 / 망향 봉 꼭대기에서 / 그냥 있을 뿐이다 / 바다는 막막하고 / 인생은 어디에서 왔는지 / 답답한데 / 여기 있을 뿐이다 / 이 벼랑 / 이 절벽 / 그대와 그냥 있을 뿐이다  

_ 임술랑〈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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