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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May 27. 2024

Rage Over a Lost Penny

베토벤의 ‘귀엽고 상냥한 분노’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프랑스 군인들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해달라는 오랜 후원자 리히노프스키 대공의 요청을 거절하며 베토벤은 이런 말을 남겼다.     


“영주, 당신의 신분은 출생을 통해 우연히 얻은 것이지만, 나는 나를 통해 존재합니다. 당신 같은 영주는 수천 명이 있겠지요. 하지만 베토벤은 오로지 한 명입니다.” 

    

불멸의 대표작 ‘운명’과 같은 곡을 생각하면 ‘Rage Over a Lost Penny(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_론도 카프리치오, 작품번호 129)’는 베토벤의 작품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예프게니 키신(Evgeny Kissin)이 앙코르 곡으로 즐겨 연주하는 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곡이다.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찾느라 하녀를 추궁하고 밤새 가구를 옮기며 소란을 피운 끝에 결국 자신의 주머니에서 동전을 발견한 일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라고 한다.      


곡을 들으면 마치 베토벤을 놀리듯 바닥을 또르르 굴러가며 손에 잡히지 않는 동전을 쫓아가다 진땀을 흘리며 화가 난 베토벤의 모습이 느껴진다. 유쾌함과 익살이 분노라는 불편한 감정을 유머러스하게 바꾸어주는 것이 매력의 포인트이다.     


슈만은 이 작품에 대해 “동전을 잃어버리고 화난 마음을 이보다 귀엽고 다정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발이 잘 벗어지지 않아 느낀 짜증과 화남을 베토벤은 이렇게 귀엽고 상냥하게 음악으로 들려준다. 세상에서 이보다 상냥하고 무해한 분노가 어디 있을까”라고 평했다고 한다.     


톨스토이의〈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그것을 살짝 빌리면, 행복하거나 즐거울 때 인간이 보여주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분노를 표현하고 처리하는 방식은 저마다 제각각 다양하다. 사랑할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는지는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의견이 충돌하고 갈등이 생길 때, 상대에게 화나고 분노할 때 그 분노를 처리하는 방식,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방식은 사람마다 크게 차이 난다. 분노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에 대한 해결을 의논하는 대신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덧씌워 화만 내었던 남자친구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한 작가 인터뷰가 생각난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들이 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그런 사람에게서는 빨리 달아나는 것이 좋다. 달아날 수 없는 사람이 그런 타입의 사람이라면 그것만큼 세상에 난감한 일도 없을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사의 명령에 따른 일이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되어버린 참혹한 일을 두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의 억울한 죽음을 두고 벌어지는 온갖 추태를 목도하면서 느끼는 분노는 ‘Rage Over a Lost Penny’처럼 상냥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베토벤이 살아있다면 이런 추태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음악으로 담아냈을까.   


***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나탈리 슈바모바(Natalie Schwamova)가 연주하는 ‘Rage Over a Lost Penny’  

https://www.youtube.com/watch?v=Zk9ASyG6j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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