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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Aug 08. 2024

요리의 에로티시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맛,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정신의학 전문의이자 작가인 정혜신은 어느 글에선가 ‘미친 사람과 정상인’의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랑과 불륜의 차이도 경우에 따라서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바로 그 아슬아슬한 종이 한 장 차이의 사랑과 불륜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남녀의 사연을 ‘요리’라는 콘셉트로 엮어 내고 있다.     


첫눈에 반한 티타와 결혼할 수 없게 되자 그녀 곁에 있기 위해 티타의 언니와 결혼을 택한 페드로. 바보 같고 터무니없는 순정인가 아니면 영악한 현실주의자인가. 그리고 평생에 걸친 티타와 페드로의 몰래한 사랑. 출간 후 라틴아메리카 전 지역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형부와 처제의 사랑 이야기이다. 세속적인 잣대로 보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지만, 라우라 에스키벨은 자칫 막장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요리’라는 매력적인 키워드를 중심으로 경쾌하게 펼쳐나가며 사랑과 요리가 한 몸으로 엉켜있는 불같은 삶의 내력을 그린다.      


요리에 대한 티타의 열정은 세상에서 허락되지 않은 그녀의 사랑이 타락하지 않도록 아슬아슬하게 받쳐주는 토대가 된다. 요리가 있어 티타의 사랑은 타락하지 않고 사랑 본연의 모습을 지닐 수 있다. 지독하게 불운한 티타의 운명도 그녀가 열중하는 요리 덕분에 생의 약동을 지니게 된다.     


요리와 사랑은 삶의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축이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먹어야 하고, 타인과의 교감과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리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감정이 들어가 있고, 요리를 먹는 사람은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이 부분을 극적으로 확대하여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연인의 결혼식을 위해 티타가 만든 요리에는 눈물이 숨어 있어, 그것을 먹은 사람들은 모두 티타의 깊은 슬픔을 함께 느꼈다. 티타가 만든 요리를 먹은 페드로는 그것을 먹으며 티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요리를 통해 느낀 사랑의 감정은 육체의 감각으로 변할 만큼 에로틱한 것이었다.   

  

음식은 또한 위로가 되기도 하고 사랑의 기억을 불러오기도 한다.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티타는 맛있는 크리스마스 파이를 먹는 동안에는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티타가 만지는 요리 재료와 요리 과정에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그대로 음식에 담겨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음식을 통해 둘은 새로운 소통을 하며 계속 사랑을 이어나간다. 시인이 시적 언어로 세상의 줄을 타듯 티타는 요리하며 사랑의 유희를 즐겼다. 이처럼 에로틱한 요리가 어디에 있을까.     


“티타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물질이 왜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왜 토르티야가 되는지, 불 같은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 가슴은 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반죽 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4월, ‘아몬드와 참깨를 넣은 칠면조 물레’ 가운데)


크리스마스 파이로 시작하여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 등 총 12개의 요리가 등장하는 12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요리로 시작하여, 요리 이야기 사이에 온갖 인간사가 맛있는 간식처럼 끼워져 있다. 요리 가운데 삶이 있고, 미움과 사랑과 후회와 분노가 있다. 요리는 곧 사랑이자 삶인 것이다.     


책의 인기에 힘입어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영화를 만든 이는 바로 작가의 남편인 알폰소 아라우이다. 책의 결말과는 달리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작가와 감독은 이후 이혼을 하였다고 하니, 영화는 영화이고 현실은 현실인 셈이다.     


1989년 출간된 소설은 시대적 배경이나 사랑에 대해 인물들의 태도 등이 현대와는 분명 다른 지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인 갈망인 사랑에 대해, 음식과 요리에 대해 여전히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인간 근원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바로 이 소설이 클래식으로 여전히 읽히는 이유이다.     


“삶은 그녀에게 모든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삶은 그녀에게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고, 그것도 몇 가지밖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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