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를 처음 알게 된 날이다. 무한도전은 내가 제일 좋아했던 TV 예능이다. 원년 멤버인 정형돈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방송에서 늘 웃고 있던 정형돈이 공황장애로 무한도전을 하차한 건, 내게 큰 충격이었다.
이후 여러 연예인이 우울증 및 공황장애를 털어놨다. 이때 처음으로 유명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 일지 실감했다. 방송에 대한 불안, 사회적 책임. 매일 불안 속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때까지 공황장애는 연예인들의 이야기였다. 내가 연예인처럼 방송할 일도,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질 일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황 장애는 나와 평생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그로부터 약 3년 뒤, 내 인생에 불쑥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이유는 분명했다. 반복되는 입시 실패 때문이었다. 수재까진 아니어도 똑똑하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성적도 준수했다. 입시 운이 없었던 걸까.
수능을 약 3개월 앞두고, 엄마가 암 수술을 받으셨다.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어 혼자 살림을 하며 학업에 정진했다. 그래도 이때까진 괜찮았다. 아픈 엄마를 원망할 수는 없으니까.
문제는 수능 당일이었다. 나는 수시 합격을 위해서라도 영어 2등급을 필수로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시험장에서 방송 사고가 난 것이다. 이에 감독관 재량으로 몇몇 반은 영어 듣기를 다시 했다. 불운하게도 우리 감독관은 이의를 수용하지 않았다.
영어 2등급이 나오지 않아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도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경험이 있어 재수를 결심했다. 엄마도 건강을 회복했고, 첫 수능은 액땜했다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원하는 목표에 다가가지 못했다. 별다른 원인은 없었다. 내 실력이 모자랐을 뿐이었다.
그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핑곗거리를 찾았다. 학원이 부실했냐느니, 독서실이 불편했다느니, 지금 돌이켜 보면 입시 실패의 원인을 찾은 게 아니라 원인을 만든 수준이었다. 이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불안에 휩싸였다. 대학이 어디냐는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기 바빴다. 등에서 식은땀도 흘렀다. SNS에서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열등감이 피어올랐다. 세상이 나 빼고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집 밖에 안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그 누구도 내게 학교가 어디냐고 묻지 않을 것 같았다. 때마침 코로나도 발병해 만나자는 사람도 없었다. 가끔 알바나 하며 용돈을 벌었다. 그 생활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그해 3월.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냐는 엄마 말에 입시 상담 예약을 잡았다. 이번에는 수능이 아닌, 고교 3년간의 성적으로만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상담받으러 가는 길에 터졌다.
학원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타야 했다. 사람이 좀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났고, 손이 떨렸다. 누군가 내게 학교가 어디냐고 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빨라졌고, 밖으로 탈출하고 싶었지만 지하철이라 당장 도망칠 수 없었다. 정말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학 대신 대학병원을 먼저 갔다. 정신과 상담을 받았고, 공황장애의 일종인 광장공포증 판정을 받았다. 정신 질환 환자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던 탓일까.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20대와 괴리감이 컸다. 내게 20대는 청춘의 상징이었다. 낭만 가득한 대학 캠퍼스, 돈독한 사교 모임, 열렬한 자기 계발. 나는 이런 것들을 꿈꿨다. 그러나 정작 사람 많은 곳에 가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언제 공황 발작이 올라올지 몰라 불안 속에 살아갔다.
이처럼 공황장애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심지어 자기가 공황장애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는 공황장애가 불안장애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을 경험한다. 시험, 발표, 면접 등. 불안감을 겪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황장애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불안 증세가 좀 심하게 나타날 뿐이다.
정신과는 내원 문턱이 높은 진료과다. 마음이 아픈 걸 알면서도, 대부분 병원 가기를 꺼린다. 내가 그랬듯이 정신 질환 환자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병원 가기를 미룰수록 통증의 골은 깊어진다.
현재 나는 3년 간의 정신과 치료를 마치고, 간호대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개방 병동에 입원했을 당시 정신 간호사를 만났다. 이분들이 하는 일이 누군가의 인생에 큰 도움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됐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직 정식 간호사는 아니다. 늦깎이 대학생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정신 간호사에 준하는 책임과 행동을 다하고자 한다. 그 시작이 바로 브런치 글쓰기다. 마음은 아프지만, 병원 가기를 두려워하는 분들이 내 글을 읽었으면 한다.
무한 경쟁 속,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사회에서 2030 청년들에게 유익한 글을 쓰고 싶다. 불안감을 이겨 내는 법,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방법 등.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