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기적인 여행자의 회한, 그리고 희망의 깨달음
희망의 종소리, 노트르담의 귀환: 파리에서 다시 찾은 나
[현재]
2024년 12월 7일.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현장이었습니다. 드디어 이 날이 왔습니다. 육중한 나무 문 앞에 선 저는 숨을 고르며 대주교가 지팡이로 문을 세 번 두드리는 것을 지켜봤죠. 문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주교의 지팡이 소리는 마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강한 울림으로 돌아왔고, 이내 노트르담은 응답했습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리자, 그 안에서 고요히 숙성된 시간의 빛이 황금빛 물결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오래된 돌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흙과 석회 냄새, 그리고 새로 칠해진 나무의 향이 섞여 공기 중에 그림처럼 맴돌았습니다. 마법 양탄자를 탄 듯 미끄러져 들어가는 대주교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신비로웠습니다.
화재 후 5년 만이었습니다. '화재 직전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며' 파리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노트르담 대성당. 850년. 노트르담은 변함없이 파리 시민과 함께했습니다. 왕조의 흥망성쇠를 지켜보고, 혁명의 함성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으며,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로 예술혼을 불어넣어 철거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위대한 문화유산은 단순히 건축물을 넘어, 수많은 이들의 삶과 예술, 신앙이 깃든 인류의 공동 기억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이를 살리기 위한 전 세계의 협력은 파리지앵을 축복하는 역사적인 날을 만들었죠. 놀람과 눈물, 감탄과 감동. 숭고한 서사가 한데 어우러진 날이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 중 하나인 노트르담 대종 '그로 부르동(Gros Bourdon)'이 "뎅~ 뎅~ 뎅~" 천상의 종소리를 울렸습니다. 대성당의 부활을 알리는 소리였죠. 웅장한 소리. 뮤지컬 속 콰지모도가 온몸의 혼을 실어 종을 울리듯, 그 소리는 메마른 영혼에 단비처럼 스며들어 잊고 있던 감정의 샘을 맑은 물처럼 터뜨리듯, 영혼을 깊이 울렸습니다.
그때, 5년 전의 악몽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은 5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귓가를 파고드는 종소리. 눈앞의 찬란한 노트르담 위로 섬광처럼 과거의 악몽이 차가운 그림자처럼 겹쳤습니다. 2019년 4월 15일. 노트르담이 화마에 휩싸인 그 날. 저는 파리 외곽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딸아이 결혼 후 떠난 서유럽 여행의 막바지. 파리지앵처럼 골목을 누빌 생각에 새벽부터 마음이 들떴죠.
그날은 노트르담 대성당, 에펠탑 투어, 센강 야경까지. 숨 막히게 황홀한 파리 일정이 가득했습니다. 다음 날은 루브르, 프랭탕 백화점 쇼핑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었죠.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설렘과 기대감이 따뜻한 물결처럼 밀려왔습니다.
조식 중 TV에서 불어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소식. "아니, 저게 무슨 소리야?"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멍해졌습니다. 뉴스 검색을 해보니 파리 전체가 화재 소식으로 도배되어 있었죠. '진화 불가' 비보까지. 파리 호텔에서 불어 뉴스를 보면서도,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화면 속 붉고 거대한 불길은 이미 노트르담 지붕을 집어삼켰습니다. 맹렬한 불꽃은 하늘로 치솟았고, 매캐한 회색 연기는 파리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었습니다. 도시는 숨죽였죠. 건물이 타들어 가는 쩍쩍 소리. 멀리서 울리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TV 스피커를 넘어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500여 명의 소방관들이 필사적으로 물을 뿌렸고, 센강 주변에선 수많은 시민들이 두 손을 모은 채 타오르는 성당을 바라보며 뜨거운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물과 비명, 절망적인 탄식이 화면 너머로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을 쳤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에펠탑보다 더 사랑받는 곳. 노트르담 대성당이 바로 그 순간, 제 눈앞에서 붉은 악마처럼 불타고 있었습니다. 콧속으로 매캐한 탄내가 스며드는 듯했고, 파리의 낭만적인 향기는 사라진 채 절망적인 그을음 냄새만이 씁쓸한 맛처럼 공기를 가득 채우는 듯했습니다.
이기적인 좌절, 그리고 변화의 시작
'내 생애 첫 파리인데, 하필 오늘 이런 일이…'
버킷리스트였던 노트르담 대성당. 불과 몇 시간 후면 만날 그곳이 불길에 휩싸였다는 사실에 저는 깊은 실망감에 잠식되었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 소실이나 파리 시민의 탄식보다, 당장 눈앞의 버킷리스트 무산이라는 이기적인 좌절감이 저에게 어두운 그림자처럼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어린아이처럼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을 지경이었죠. '이번에 못 보면 다음에 또 보러 오면 될 텐데.' 개인적인 욕심이 눈을 가려 판단력이 흐려졌던 겁니다. 첨탑이 무너져 노트르담 대성당 쪽은 통제되었고, 파리 시내는 온종일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바토 파리지앵 크루즈를 타면 멀리서나마 볼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기대마저 한 줌 재처럼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뱃길마저 막혀 에펠탑 야경으로 만족해야 했죠. 제 마음속 노트르담은 한없이 멀어져만 가는 꿈처럼 아득해졌습니다.
다시 현재, 나를 부르는 노트르담
아득했던 그 기억 속에서 허우적대던 저를, 현실의 웅장한 종소리가 다시 따뜻한 햇살처럼 현재로 이끌었습니다. 5년 전의 좌절감이 무색하게, 제 눈앞에는 찬란하게 복원된 노트르담이 굳건히 서 있습니다. 저는 철모르던 시절부터 '노트르담의 꼽추'에 매료되었습니다. 책과 뮤지컬 속 콰지모도, 그리고 대성당. 철거 위기 노트르담을 지켜낸 빅토르 위고. 뮤지컬 '대성당들의 시대' 넘버의 웅장함. 그 선율이 제 발길을 자석처럼 강하게 잡아끌었습니다.
운명적인 첫 만남. 노트르담은 쉽사리 제 곁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저에게 또 다른 의미를 주었습니다. 850년 세월. 그 자리에서 견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화마가 삼키는 장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파리 시민들. 그들의 탄식, 눈물, 기도. 무력감 속 막막함이 그들을 짙은 안개처럼 덮쳤을 겁니다. 그럼에도 '화재 직전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며 복원하겠다는' 굳건한 약속과 전 세계적인 모금, 그리고 수많은 장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이어졌다는 소식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단순히 건물을 복구하는 것 이상. 인류가 문화유산과 역사에 깊은 경의를 표하고, 미래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려는 숭고한 의지였습니다. 저는 이 복원 작업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기약 없더라도 복원 후에 꼭 다시 방문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 직전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며 복원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제 저는 버킷리스트 하나를 채우려는 이기적인 이방인이 아닙니다. 노트르담의 숭고한 가치. 그 회복의 과정. 경외하는 마음으로 파리로 날아갈 때입니다. 노트르담이 저를 부릅니다. 저는 주저 없이 파리행 티켓을 끊습니다.
마침내, 희망의 문이 열리다
이윽고 대주교가 세 번 문을 두드립니다. 삐걱이는 낡은 나무 소리, 마침내 열리는 묵직한 문. 그 틈으로 쏟아지는 찬란한 빛이 저를 감싸 안습니다. 마치 꿈속을 걷는 듯, 저도 홀린 듯 성당 내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발아래 오래된 돌바닥에서 묵직한 시간이 느껴지고,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쏟아지는 오색의 빛이 피부에 닿는 듯 온몸으로 퍼져나갑니다. 고요하지만 웅장한 공기가 폐부 가득 차오르고, 멀리서 들려오는 희망의 종소리가 가슴 깊이 파고들어 메아리칩니다. 노트르담이 전하는 숭고한 메시지.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제 눈과 귀, 그리고 온 영혼을 통해 흐르는 살아있는 감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