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네모의 꿈」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 한 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걸
주위를 둘러 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네모난 아버지의 지갑엔 네모난 지폐
네모난 팜플렛에 그려진 네모난 학원
네모난 마루에 걸려있는 네모난 액자와
네모난 명함의 이름들
네모난 스피커 위에 놓인 네모난 테잎
네모난 책장에 꽂혀 있는 네모난 사전
네모난 서랍 속에 쌓여 있는 네모난 편지
이젠 네모 같은 추억들
네모난 태극기 하늘 높이 펄럭이고
네모난 잡지에 그려진 이달의 운수는
희망 없는 나에게 그나마의 기쁨인가 봐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심지어 옛말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그 역사가 오래된 것 같다. 물론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계란으로 바위치”는 세상이었고, 잘못하면 목숨까지 잃던 무서운 시대가 길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을 둥글게 살라는 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도구 없이 완전히 둥근 모양을 그린 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냥 펜만 들어서 둥글게 그리려고 해도 어느 지점에서는 모가 나게 되어 있다.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이유? 둥글게 살아가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거지.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네모난 것들뿐인 세상에서 우리는 둥글게 살라는 걸 강요당하고 있다. 둥글게 사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오히려 너무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 사회를 분노 사회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예능 프로그램 같은 걸 보면 우리가 보통 성격 좋다는, 논란이 없다는 연예인에 대해 심리학자들이 우려 섞인 말을 할 때가 많다. 우리의 감정 중에 좋지 않은 감정은 없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행동만 있을 뿐. 그런데 우린 모난 성격이라는 말로 우리의 감정 중 일부를 배제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걸까?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가 둥글게 잘 굴러가기 위해서 구성원들은 모난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