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잘하게 되네?
고3이 될 때까지 아이를 키운 엄마가 되고 보니 나도 모르게 잘하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노력하지 않아도 점점 잘하게 되는 skill~
운전 skill
20년 전 나의 첫 차는 50만원짜리 에스페로였다. 저렴이 똥차지만 왕초보는 벗어나게 해 준 고마운 차. 일 차선, 이차선은 자신 있게 달리다가 좌회전, 우회전만 나오면 초긴장 모드로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꾸준히 운전을 했다. 몇 달이 지나도 최고난도 차선 갈아타기는 어렵기만 했다. 심지어 차선진입을 해야 하는데 갈아타기를 못해서 동네 몇 바퀴를 돌고 집에 들어간 적도 많다. 몇 년 후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기까지 운전을 하지 않았었다. 왕초보는 아니라며 아이가 유치원 다닐 즈음 다시 운전을 시작했지만 차에서 내릴 때는 어김없이 등줄기가 축축했다.
그랬던 내가 수천번의 픽업 덕분에 지금은 베스트 드라이버 비슷해지고 있다. 고3이라 대부분은 늦은 시간에 과외를 하지만 가끔 보강이 잡히거나, 시험기간에는 저녁시간으로 변경되는 날이 있다. 자주 픽업을 하다 보니 시간대별 빠른 길을 찾아내었고,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차선변경 스킬은 경지에 이르는 중이다.
‘영어 과외지? , 지금은 6시, 퇴근시간에 차가 몰리니 외곽도로를 타야겠다 ‘
‘20분 만에 도착해야 한다고? 그럼 여기는 3차선을 타고 가다가 4거리 지난 후에 차량이 줄면 2차선으로 진입해야지’
“도착!!! 1분 지각 ~! 뛰어!”
문제집 소분 skill
“엄마 나 도서관 다녀올게요~“
인사하는 둘째의 가방이 터질 것만 같다.
“공부할 것만 가져가지 뭘 그렇게 많이 가져가?”
“엄마 문제집 한 권이 얼마나 두꺼운지 알아? 두 과목밖에 안 넣은 거야~”
가방 속의 문제집을 모두 꺼내보니 두께가 나 어릴 적 보던 백과사전 같다. 그 날 이후 나는 가방무게를 줄여주기 위해 문제집을 소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제집을 가르고 펀칭기로 뚫고 엮어주다가, 최근에는 제본기를 이용한다. 문제집마다 제본을 자주 하다 보니, 이제는 문제집 한 권 소분이 10분이면 뚝딱이다. 어디 문제집 뿐이겠는가? 시험기간이면 과목별 프린트물도 옆에서 '찹찹' 찝어주고, 모의고사 준비기간에는 기출문제도 죄다 뽑아서 묶어준다. 입시 학원으로 유명한 이뚱스나 메달스터디에서 담임역할하는 샘들이 이런 걸 하는 거 같았는데… 왜 하는지 알겠다.
'엄마는 문제집을 소분할 테니, 너는 많이 풀거라~'
눈치보기 skill
심하게 무표정이다. 무슨 말을 해도 단답형 답이 돌아온다. 이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이럴 때 건드리면 최고치의 짜증스러운 말을 듣게 되고 나의 화를 자극할 것이 분명하다. 이럴 땐 조용히~ 자기가 알아서 준비하고 등교하게 내버려둔다. 준비하면서 투덜거려도 듣지 말고, 머라고 중얼거려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중문여는 소리가 들리면 개미소리보다 조금 더 크게 “잘 다녀와~~ 이따 만나~~“ 하면 된다.
“엄마! 나 오늘 진짜 와~ 학교에서~말도 안 되는 일이 있었어!”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집으로 들어온다. 이것은 오늘 있었던 이슈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상황이다. 최대한 재미없어도 격한 호응으로 받아준다. 무언가 억울한 일을 당한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더 억울해하고 함께 욕을 해준다. 우린 영원한 동지이며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함께 파이팅을 외치기도 한다.
웃으며 들어온다. 기분이 정말 좋은 표정이고, 노래도 부른다. 최근 들어 가장 좋은 분위기다. 이때가 기회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하고싶은 말들을 넌지시~ 던진다. 조금 리듬 타면서 말하면 더 좋다. “요즘 방정리 안 하더라, 오늘은 조금 하고 자는 게 어때?”,"단것 많이 먹지말고 밥을 많이먹어", “엄마 빨래 돌렸는데 같이 좀 개자~” 이런 날은 순순히 함께 한다. 그리고 나도 너무 행복한 기분을 느낀다. '원래 이게 우리 둘째 모습이지' 하며 원없이 이뻐해 준다.
소소한 행복주기 skill
내가 요즘 가장 잘하고 싶은 분야다. 눈뜨면 학교 가고, 눈감기 전까지 학원에 있는 둘째에게 일상의 무료함을 해소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조금 보태서 소소한 행복감이랄까.
"오? 이거 어디서 났어?" 최신유행 까먹는 젤리다. 일명 '까젤'.
최신유행 간식을 과외 이동 중에 슬쩍 건네면, 둘째 인스타에 '까젤'사진 올라가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주말에는 과외가 많아서 이동 중에 식사를 해결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맛있는 점심식사를 보온도시락에 고이고이 싸본다. 곤드레밥 위에 올린 스테이크, 치즈를 죽~늘어뜨린 떡볶이, 감자수제비, 김치볶음밥과 어묵국, 바질파스타 등등 요리솜씨가 없지만 유튜브를 멈추고 플레이하고를 반복하며 만든다. 이제는 주말도시락이 은근 기대된다는 둘째가 양손 엄지 척, '쌍따봉'으로 보상해 준다. 이러한 기쁨을 저버릴 수 없기에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리며 '인기간식', '맛있는 도시락'을 종종 검색한다.
그리고 아이가 유독 풀이 죽어있거나, 예민해 보일 때, 혹은 대화를 자주 못 나눌 때에는 몰래 필통 안에 작은 메모와 초코바로 킥을 날려준다. '힘내라 둘째야!!'
이 외에도 더 많은 skill을 보유하고 계실 많은 수험생 부모님들 모두 힘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