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다리고기다림, 그리고 3월 시작
(마지막편)

수능이후 기다리고 기다리고

by 모든행운이 너에게

수능전 면접 후

수능 후

수능후 면접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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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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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두번의 면접과 수능시험이 지나갔다. 생기부 기반 면접과 생기부 블라인드 면접 두가지의 유형을 준비해서 치뤘다. 수능 전 면접 보다 수능 후의 면접을 우리집 둘째는 더 힘들어 했다. 아마도 수능 이후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무기력감을 느꼈던 것 같다. 면접만 모두 끝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발표전까지의 시간이 무겁다. 나도 일부러 못봤던 드라마도 보고 자극적인 연애프로그램도 찾아봤다. 재미가 없다. 가만히 앉아서 집중을 하고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하거나 하는 등의 일도 잘 되지 않았다. 집중을 할수록 입시 결과에 대한 망상을 하게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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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최초합 발표

6개 대학

6 예비(모두 예비번호를 받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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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창을 열어놓고 둘째가 미세한 한숨을 뱉는다.

둘째 : A대학 면접볼때 대답 다해서 붙을줄 알았는데....

나(엄마): 맞아 그리고 B대학도 분위기 좋았잖아

둘째: 질문에 대답하면 교수님이 박수치시고, 대단하다고 하면서 박장대소하고 하시길래 내심 기대했어. 그래도 예비번호 있으니까 수시에서 대학을 갈수는 있겠지?


3개 충원율 확인을 해보니 3개정도는 예비번호가 안정권이라 합격할 것 같있다. 그래도 최초합이 하나 있었더라면 둘째가 마음편히 나머지 학교를 기다릴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1차 충원 발표

안정권 이었던 5순위와 6순위의 학교는 합격이었다.

2,3,4차 충원발표....더이상 진전이 없었다. 마지막 추합일까지 1,2지망의 학교의 미련을 놓지 않았다. 예비1번도 있었기 때문에 기다림의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마지막 일주일의 기다림의 시간이 하루하루 숨막히게 무거웠다. 황금돼지 해라서 대학교 충원율이 높을테니 기대해도 좋다는 희망뉴스가 들려왔지만 우리얘기는 아니었다. 절망과 희망의 감정이 하루에도 몇번씩 오고갔다.


졸업전까지 고3은 학교의 프로그램에 따라 하교시간이 들죽날죽이었다. 몇몇일은 지역의 도서관이나 문화관에서 한두시간 체험을 하고 하교시키기도 했다. 무단결석과 이탈행동을 막으려는 학교의 노력이 있어서 인지 대부분 등교를 한다고 했다. 둘째의 친구들 혹은 지인 자녀들의 합격소식이 들려왔다.


마지막 추합 발표일... 기대와 체념의 감정이 수차례반복되고 있었다.


--------------------------------------------------------------------------------------------------------------------------마지막화를 이후 내용에 연결합니다.(제가 30화까지만 쓸수있는걸 몰랐습니다)


3월, 시작!

-모두 새롭게 출발-


4순위 학교 등록을 해놓고 마지막 추합 발표일에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걸려온 전화한통.

상기된 딸의 목소리.

" 엄마~ 대기 1번 드디어 합격했어. 드디어 전화가 왔어!, 학교 바꿔서 등록할게"

마지막 추합일, 오후 3시쯤이었다.


둘째는 초반에 대기 1번을 받고 당연히 합격할 거라 생각하고 등굣길을 찾아보고, 하고 싶은 동아리 조사까지 마쳤었다. 하지만 마지막 추합 전날까지 아무 소식이 없자 포기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마지막 추가 합격 발표를 끝으로, 두 자녀의 대학입시는 막을 내렸다. 그동안 응원과 축하를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새 학기를 앞두고 남은 두 달여간의 시간이 있었다. 둘째는 모태솔로를 탈출해 보라는 부모의 간절한 권유를 무시한 채 한국을 탈출하여 타국을 누비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용돈과 아르바이트 급여를 모으는 족족 떠나는 첫째를 봐와서 그런지 둘째도 합격소식을 듣자마자 비행기 티켓부터 끊었다.


2026.3.1. 일요일

두 아이가 함께 살 집으로 온 가족이 함께 향했다. 둘째도 서울에 자리잡게 되면서 기쁜 마음으로 서울에 집을 얻었다. (시어머니의 도움이 있었다) 서울집을 구하고 공백기간이 있어서 남편과 둘이 벽지와 장판, 싱크대까지 모두 새것으로 교체했다. 아이들은 새집 같다며 좋아했고, 우리부부는 그동안의 수고가 보람으로 돌아왔다.

서울 생활이 처음인 둘째를 위해 등굣길을 미리 한번 가보는 체험을 하고, 함께 1박을 하며 생활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과 교통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아침식사 후 남편과 나는 서울집을 떠나 우리 집으로 곧장 왔다.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남편은 씻자마자 바로 잠들엇고, 나는 둘째 방에서 잘까 하고 들어갔다.

그동안 애써 눌렀던 감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빈방을 들여다보며 떠오른 지난 추억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이제 이 집은 앞으로 비어있을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아서였을까.

결국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고 나는 그 감정을 그냥 흘려보냈다.

언젠가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으니까.


올해 3월은 우리가족 네명 모두에게 변화가 많은 시기다. 나는 직장 내 발령이 있었고, 직업 특성상 3월이 가장 바쁜 시기다. 남편 역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느라 여유가 없다. 두 아이도 첫 자취와 새 학기를 맞아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우리 부부는 녹초가 된다. 3월부터 꼭 해보자고 다짐했던 것들이 있었지만 결국 모두 내려놓았다. 대신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3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로 보내기로 말이다.


무념무상의 3월을 보내고 나면, 4월 에는 빈둥지에 남은 우리 부부가 어떻게 살아갈지 천천히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 그동안 [고3이 가고 고3이 왔다]를 읽고 공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4월부터는 빈둥지의 부부 일상을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______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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