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야 고생했어~!!
어둑어둑한 아침 7시
먹는 둥 마는 둥 아침을 대충 먹고 아빠차를 타고 시험장에 도착했다.
추운 겨울날씨였다. 꼭 그날만 되면 더 추워진다는 수능 보는 날의 공기였다.
시험장 앞에는 커피나 율무차를 나눠주는 여러 명의 후배들 그리고 선생님들이 서 있었다. 나는 율무차 한 컵을 받아들고 뛰다시피 안으로 들어갔다. 수능을 보러 온 모든 수험생들이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입장하는데,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듯해 괜히 부끄러웠다. 시험 보러 온 것이 실감났다. 머리를 감고 다 말리지 못한 단발머리는 대형 똑딱핀으로 고정했다. 시험 보는 중 흘러내리는 걸 방지하기 위한 나의 대비책이었다.
시험이 모두 끝나고 교실밖을 나오니, 마중 나온 부모님들이 교문 앞에 한가득이었다. 나는 혼자 걷고 싶은 만큼 걷다가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께서는 성적관련된 잔소리를 많이 하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는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욕심만큼 성실하지 못했고, 성적이 떨어지면 늘 죄책감이 앞섰다. 그래서인지 수능날 귀갓길도 풀이 죽어 있었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할 걸 알았고, 가고 싶은 수도권 인지도가 낮은 대학은 허락해주지 않을 것도 알았다. 허무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좀 더 배회하다 집에 늦게 도착했다. EBS채널에서 발표하는 정답을 보며 채점했다. 채점속도가 느려서 화면이 넘어가면 다시 그 과목 답안이 나오길 기다려야 했다.
총점을 내며 마치 이 점수가 나의 10대를 평가하는 채점표 같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점수였다. 25년도 더 지난, 수능날의 기억이다.
둘째 수능 보는 날
새벽 5시 30분. 도시락을 싸야 하는 나는 제일 먼저 일어났다. 메뉴는 황태뭇국, 계란말이, 숙주나물무침이다. 먼저 쌀을 씻어 전기밥솥 시작 버튼을 누르고, 그동안 황태뭇국을 끓이며 계란말이와 숙주나물을 완성했다. 보온도시락을 꺼내서 뜨거운 물로 예열한 후에 조심스럽게 음식을 담는다. 뚜껑을 열다가 델까 싶어 뜨거운 국은 3/5 정도 담았다. 어느새 둘째가 일어나서 씻는 소리가 들렸다. 수능 보는 날은 최대한 많은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조용히 있었다. ’ 잠은 잘 잤어? 푹~~?‘, ‘응 나 준비하고 나올게~‘ 정도의 대화만 나누고 각자 준비했다. 날씨를 체크해 보았는데 작년처럼 따뜻했다. 이제 수능한파는 없나 보다.
6시 40분쯤 남편이 준비물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수험표, 손목시계, 샤프, 지우개, 수정펜, 컴퓨터사인펜, 등등등 … 모두준비완료, 7시에 출발하자! “
7시에 시험장에 도착했다. 수험생이 한두명씩 들어갔다. 아직까지는 수험생의 입장으로 붐비지 않았다. 교문 앞에서 둘째가 시험 보게 될 건물위치를 대충 파악하고 들여보냈다. 자녀가 시험을 보러 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뒤돌아 서지 못하는 학부모님들이 몇몇 보였다. 나는 “둘째야! 들어가자마자 화장실부터 체크! 체크!, 끝나고 교문 앞에서 기다릴게 이따 만나~”라고 평소보다 살짝 하이텐션으로 외쳐주었다. 감성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극강의 AB형이기 때문에 절대 지난 세월을 회상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연차를 내고 집에 있었다. 그냥 작년을 생각해 봤을 때 아무것도 집중이 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동안 집안 정리를 하고, 잠깐의 집앞산책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후 4시쯤 집을 나섰다. 둘째가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출발했다. 촬영을 하려는 소형카메라를 들고 있거나, 핸드폰 동영상을 켜고 기다리는 분들이 보였다. 4시 50분이 되자 멀리 학교건물을 빠져나오는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문 한쪽만 개방하고 학생을 내보내기 때문에 둘째를 놓칠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학부모님들이 교문만 바라보고 서있으니 나오는 학생들이 놀라 멈칫하다가 나오기도 했다. 나 혼자 마음속으로 ’ 모두 고생 많았어요 수험생 여러분~’을 여러 번 외쳤다. 그러던 중 통화하면서 우는 학생을 발견했다. 내 마음이 아렸다. 울컥했지만 잘 참았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나오다가 아빠를 보자마자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열심히 공부 안 해서 미안하다고 서럽게 우는데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아프다. 주변 엄마들도 많이 울었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공부가 아니면 결과물을 보여줄 수 없는 아이들이 너무 짠했다. 5시 10분이 지나자 거이 모든 학생들이 빠져나온 것 같았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시험보다 무슨 일이 생겼나?‘,’ 아파서 어디 누워있나?’,’너무 긴장해서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갔나?‘,’ 시험을 망쳐서 울고 있나?‘별별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학부모가 손에 꼽을 정도다. 5분 정도 더 지났을까, 둘째처럼 보이는 학생이 엄청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나의 둘째가 맞았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있었고, 발걸음은 왠지 화가 난 것 같았다.
“둘째야~ , 여기 여기!”
“아니 엄마! 너무 짜증 났잖아 진짜!, 아니 컴싸(컴퓨터용 사인펜)가 마킹하다 터져서 답안지 바꾸고, 국어 안 그래도 시간 없는데 첫 시간부터 말이야! 화나!, 엄마! 그리고 컴싸가 다시 받았는데 또 너무 흐려~ , 그래서 마킹을 여러 번 하고… 수능을 마킹하는데 너무 많이 썼어. 아후진짜!”
둘째는 컴싸 때문에 화가 난 채로 끝까지 집중해서 수능을 보느라 얼굴도 벌게지고, 허리도 아프다고 했다. 수능 때마다 사건사고들이 많은데, 이번에는 컴싸와 샤프심이 문제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컴싸불량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수에 예민한 둘째는 절대 오늘 채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남편과 나는 정말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지만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저녁을 먹은 후 방에 들어간 둘째가 한참 무언가를 하다가 나왔다.
“엄마 내가 집 지어줄게 “
“어? 진짜?(나는 내심 감동을 받았다. 요즘 전원주택에 살고 싶은 병에 걸려서 남편과 땅을 보러 많이 다니기도 했다.)
“응 여기 봐봐~ 어때?”
이게 뭐냐….. 가상주택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그동안 못한 집짓기 게임을 한 모양이다. 그래 이게 우리 둘째의 원래 모습이었지 싶었다.
유쾌하고 엉뚱하고 재미있는 둘째가 다시 돌아왔다. 수능이 끝나면 애들 눈빛이 변한다더니 … 순둥 한 눈빛이 반갑다.
절대 채첨을 하지 않겠다던 둘째는 유튜버가 진행하는 채점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채점을 하게 되었고, 수능최저를 모두 맞춘걸 확인하고 맘편히 잠들었다. 이제 앞으로 남은 면접을 치르고 12월 발표일까지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끝까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