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업과 픽업사이

벌써 가을

“이제 이것도 다음 주까지 하면 끝나네?” 남편이 말을 걸어왔다.

“그다음 주에 우리는 뭐 하고 있을까?”

“결과 발표일까지는 그냥 조용히 기다리는 시간이겠지 뭐~”

“학원, 과외 픽업 다해서 거이 10년은 했을 거야. 허전할 거야 그렇지?”

“당분간은 아차! 과외 갈 시간인가? 싶었다가, 아참…. 둘 다 대학 갔지? 이러려나? “

“아 뭐야~ 기분이상해~“

“우리 둘이 퇴근 후에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해보자. 그럼 되지 뭐~”

“그래 지금 그거 걱정할 건 아니긴 한데~ 그냥 … 이제 과외픽업이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기분이 묘해서”

허허허

감정표현이 서툴고 공감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우리 집 대표 AI인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수능을 3주 정도 남겨둔 10월 어느 날 밤 9시 우리 부부는 둘째를 과외장소에 내려주고 산책을 하며 지난 몇 년간 픽업과 픽업사이의 시간들을 추억했다. 퇴근 후 빠르게 저녁식사를 하고 픽업하는 것은 긴 시간 동안 우리 부부의 일상이었다. 아이들이 초중학교 시절에는 과외시간이 이른 관계로 혼자 많이 다녔지만,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시간이 늦춰지고, 대부분 남편과 함께했다. 집에서 30여분 정도 떨어진 장소에 둘째를 데려다준 후 다시 집에 왔다가기엔 시간이 애매하기 때문에 과외하는 시간 동안 기다린 적이 많았다. 날씨가 좋으면 걷고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근처 가게들을 배회했다. 세일하는 옷가게가 있으면 옷을 쇼핑하기도 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서점에 가서 책도 보고, 근처 맛집탐방도 하고, 전기 자전거도 타고, 정말 피곤한 날에는 차에서 둘이 자기도 했다. 덕분에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친구나 친척언니들이 전화를 걸어올 때 함께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사이좋은 부부로 알려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오늘은 카페다. 10시 반이 되어야 과외가 끝나는데 카페는 10시까지라서 30분은 강제 걷기 운동을 해야 한다. 꿀생강차를 주문했다. 목부터 데워지고 뱃속으로 싸르르하게 내려가는 뜨끈함이 기분 좋다. 이런저런 하루일과를 이야기하다가, 아까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나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남편~첫째 때는 장거리 픽업하느라 고생하고, 둘째도 늦은 시간에 하는 픽업은 도맡아 하느라 고생했어.”

“나만했나….. 퇴근하고 피곤할 텐데 그 짧은 시간에 밥 챙기고 태워가고 고생 많았어. “

“애들 지각할 것 같으면 우리가 더짜증 내고, 차 막히면 한숨도 많이 쉬었는데 ㅎㅎ”

“그런 날은 기다리면서 스트레스 해소한다고 단것도 많이 사 먹었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후회 없이 해주려고 애썼어.”

“맞아, 시험기간은 또 어떻고….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마냥 기다렸잖아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혼자는 힘들었을 거야. 같이하니까 그래도 재밌게 기다렸어. “

“애들은 애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열심히 시간을 보냈으면 잘한 거야. 그렇지? “

”응…“

대학 입시가 끝날 때쯤이면 지난 시간을 회상하게 된다. 그리고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서 성인으로 가는 그 시점, 그제야 부모는 중년의 나이를 체감하게 되어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일명 “갱쓰”가 오고 있다. (요즘 갱년기를 갱쓰라고 …ㅎㅎ)


어둑어둑한 밤에서 캄캄한 밤으로, 습하고 후덥지근한 공기에서 마르고 시원한 공기로 변했다. 가로등 불빛아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 벌써 가을이다.

나의 일 년 느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런 느낌이다. 긴장과 설렘의 봄, 조금 지루한 여름, 조급해지는 가을, 그리고 아쉬운 겨울.

올해의 가을은 유독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결혼생활도 가을이 , 육아에도 가을이 온 것 같다. 많은 것들이 반 이상을 넘어섰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하다. 이 느낌을 글로 다 표현할 재주가 없어 안타깝다. 그래서 제목과 남편과의 대화만을 적어두고, 혼자 여러 가지 생각에 울컥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하고, 육아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예민하게 고민하고 실수 없이 잘해보려 치열하게 생활했던 탓인 것 같다. 신혼 때는 시댁에 무엇이든 잘 보여야만 하는 것인 줄 알고 감정을 눌러가며 '좋은 사람'인 척 '잘하는 사람'인 척했다. 아기를 낳고 난 후에는 '잘 키워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작은 실수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몸이 아파야만 비로소 뭔가 잘못됨을 깨닫고, 그제야 조금씩 생각을 바꿨던 것 같다. 그리고 몸이 나아지면 다시 또 나를 잊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부족함이 티 나지 않게 하려 애썼다. 왜 그랬을까 싶지만 다시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또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싶다.


결실의 계절인 이 가을에 우리 집 둘째 귀여운 막둥이가 노력한 만큼 좋은 결실을 맺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사촌동생이 직접 배달해준 합격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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