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안 할수는 없지만
작년 봄쯤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럴듯한 퇴사의 이유란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퇴사해 버린 유일한 사수였던 팀장님의 부재와 그 일을 맡아하던 디자이너인 나에게 개발도 해야 한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해대는 상사의 콜라보였다.
당시에는 내 일을 하고 싶다고 큰소리치며 나왔지만 가장 큰 퇴사의 이유는 하기 싫은 것을 견딜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때려 죽어도 9시 출근 6시 퇴근을 하고 남들과 웃으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것이,
머저리 같은 상사의 말을 고개 끄덕이며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싫었다.
할 일이 없어 굶어 죽더라도 회사는 못 다니겠다는 극단적인 생각 속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었다.
뒷일은 딱히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 몇 달을 별생각 없이 펑펑 놀면서 통장만 비어버렸다. 이건 힘들었던 회사생활에 대한 정신적 치료라 생각한다.
요즘에는 다행히 프리랜서로 입에 풀칠할 만큼의 돈을 벌고 있지만 (운 좋은 달에는 회사 다닐 때보다는 많이 벌 때도 있다.) 이상하게 일이라는 건 참 하기 싫다는 것이다.
물론 일하는 만큼 벌 수 있어서 기쁨을 동반하는 고통이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정말 하기가 싫다고 계속해서 외치게 된다. 일이란 그런 걸까? 인간은 왜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걸까?
이건 사회 구조의 문제일까? 아니면 개인이 가지는 게으름이란 문제일까?
어떤 일이든 일이라는 역을 맡게 되면 그게 어떤 것이든 하기 싫다는 마음이 따라붙나 보다.
아니면 정말 내가 평생 할 만큼의 딱 맞는 직업을 못 찾은 걸지도 모른다.
딱 맞지 않아 살짝 벌어진 퍼즐 조각의 틈새로 하기 싫다는 마음이 솔솔 불어오는 것이다.
재수생시절 공부가 너무 재밌어 공부에 미쳐있었던 나에게 옆자리에 앉은 한 살 더 많고 좁은 학원 속 세상을 보는 눈이 나와는 달랐던 오빠가 어느 날 그런 질문을 했다.
공부보다 더 재밌는 게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거보다 더 재밌는 세상을 알게 된 이후에도 지금처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시 나는 그런 세상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것보다는 질문이 참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외계인이 하는 말 같았다.
이상하게 요즘 종종 그 질문이 생각난다.
공부다음 재밌는 게 그림이었는데 살아보니 더 재밌고 신나는 게 많았다.
재미만 쫓아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일이 나의 정말 정말 정말 마지막일까? 하는 의문은 든다.
이왕이면 더 재밌고 덜 하기 싫은 일이 이 세상에 있지 않을까?
식물 물 주기나 침구 청소하기 같은 것이라면 직업이어도 재밌을 거 같은데 그걸 주 5일씩 12달을 하면 지금처럼 하기 싫으려나?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