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하던 날

by 엘레강스박

"언니는 생활력이 참 강한 것 같아."

과대표가 내게 말했다.

"이번에도 언니가 전액 장학금 받을 것 아니유? 알바까지 뛰시려고?"

교수의 지시로 방학 중 관공서 아르바이트 신청을 받던 그녀는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IMF 외환위기 당시, 하루아침에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실업급여를 다 받고 나서도 재취업이 되지 않으니, 내게 자존감이라는 게 있기는 했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비참해졌다.

쫓기듯 달려간 곳은 대학이었고, 가난한 대학생이 된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출을 줄여야 했다.

2년제 전문대학이라 해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있었고,

내가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어서 그들보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과에서 일등을 할 수 없었다.

과톱을 놓치면 전액 장학금은 물 건너가고, 생활고 때문에 그토록 대학 진학을 말리던 엄마에게 어떤 원망을 듣게 될지 모른다.

대학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하더라도 책값을 비롯해 교통비, 식대 등 기본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직장생활로 모은 약간의 돈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

외환위기 여파로 연 수익률 20%에 달하는, 매달 이자를 수령할 수 있는 금융상품에 맡겨놓은 터였다.

그러나 그 목돈을 지키지 못하고 헐어 쓰게 되면 나도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에 짠순이가 되었다.

그래서 나이 많고 술 못 마신다는 핑계로 동기들이 어울리는 자리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고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숫기가 없어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하지 못했다.

한 번은 대학가 노래방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역겨운 꼴 보아가며 일주일간 일을 대신해 주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 사실상 친구도 아닌 나쁜 X였지만- 제 통장으로 들어온 알바비 중 내 몫을 주지 않고 한동안 잠적하는 바람에 절교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러니 단기간일지언정 관공서 알바는 꿀알바 아닌가.

당연히 일등으로 손을 들어 꼭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

그런 내 모습이 과대표 눈에는 악바리로 보일 수도 있었겠다.


사실 우리 과에는 나보다 성적이 더 잘 나올 법한 학생 '김'이 있었다.

'김'도 나처럼 늦게 대학에 들어와 제 나이에 입학한 동기들보다 두 살 위였고, 나보다는 한 살 아래였다.

그런데 그 애가 1학년 때는 학과 시험에 열을 올려 나를 긴장케 하더니, 2학년이 되고서는 그 경쟁에 그리 연연해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최소한의 지출이 최우선이었기에 최고의 학점을 받기 위해 리포트와 시험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나 내가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외환위기 발 다운사이징(downsizing)의 기류로 기업에서는 지방 전문대까지 배정할 입사원서가 없었고

혹 있다 하더라도 나처럼 나이가 많고 외모가 부실한 학생을 추천하지는 않았다.

단지 이 절망적인 시기에 무엇이든 해놓아야 희망을 놓지 않을 것 같아서,

내 못난 청춘은 그렇게 꾸역꾸역 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다.


느슨해진 '김'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과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전공과 관련된 일자리도 구해 직장인이 되었다.

구직할 때의 절박함을 까맣게 잊고, 직장에 대한 불만으로 월급날만 기다리는 재미로 살고 있을 때였다.

주말에 친구와 함께 시내에 있는 미용실에 갔다가 대학 동기를 만나게 되었다.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근황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다 동기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언니, 그 왜 '김'언니 말이에요, K대 편입한 것 알아요?"

대학 다닐 때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던 내가 졸업 후 동기들과 연락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동기가 말하는 '김'이 갔다는 K대라 함은, 우리나라 명문 SKY대의 K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회계사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서울로 올라갔대요."


보통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게 되면 기분이 좋아져 돌아다니고 싶어 진다.

친구와 함께 머리손질도 했겠다, 날씨도 좋겠다 이왕 시내 나간 김에 평소라면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아이쇼핑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두통을 핑계로 친구와 일찍 헤어졌다.

복잡한 심정이 나를 짓눌렀던 탓이다.

'김'에 대한 단순한 시기심이나 질투심이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던 '김'은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김'은,

알량한 그 목돈 깨지 않고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에 만족한 나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언제 그 '꿈'이란 것을 가졌던가.

하늘은 저렇게 파란데 내 청춘도 아직 푸른데, 내 꿈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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