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놀란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 맛없는 쫄면 때문이었다.
아니, 김대리가 화근이었다.
어제 오전이었다.
회의실에 간 김대리가 부랴부랴 다시 오더니,
나를 한번 쏘아보고 회의자료 한 부를 잽싸게 가져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피곤한 하루가 될 것을 알아차렸고, 책잡힐일은 없는지 주변을 둘려보았다.
90년대 중반이던 그때, 단순 사무직 여사원들은 결혼으로 퇴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학력에 따라 승진시험 응시 기준이 되는 근속연수도 달라서, 고졸사원이 주임을 거쳐 대리가 되는 것은 대졸사원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대부분의 고졸 여사원들은 주임으로 불리다가 직장에서 사리지는 것이 예사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들어간 직장에는 고졸 여성으로 유일하게 '대리'직급을 단 김대리가 있었다.
나는 그녀가 있는 부서의 막내 사원이었다.
입사 첫날 김대리는 본인이 나의 학교 선배임을 강조하면서 학교 명성에 누를 끼칠 행동은 하지 말자고 했다.
30대 미혼인 그녀는 항상 풀메이크업을 하고 반듯하게 다린 유니폼 차림으로 30분 일찍 출근을 했다.
일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그녀였다.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7cm 이상 되는 높은 굽의 구두만 신고 다녀서 그리 작아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 있고 당찬 그녀의 모습이 좋아 보여서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았다.
가난한 시골집에서 자란 나는 매사에 눈치를 보며 내 주장을 하지 못했다.
그런 성향이 직장에서도 비쳤는지 그녀는 만만한 나를 자주 갈구었다.
업무와 관련된 것 외에도 회는 왜 안 먹느냐, 술도 마실 줄 알아야 된다, 화장 좀 하고 다녀라 하며
개인적인 취향까지 간섭을 했다.
회의가 끝났는지 또각또각 그녀의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문 가까이에 앉은 나를 향해 짜증을 냈다.
종이에 손가락을 베었다는 것이다.
후문에 의하면, 중요한 그 회의에 김대리가 자료 한부를 적게 가져갔다고 한다.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그녀가 적잖이 당황했음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사실 내가 타이핑과 복사를 하고, 몇 번이고 확인해서 수량을 맞추어 놓은 회의 자료였다.
그런데 굳이 본인이 직접 들춰보고 세어보더니, 한 부를 내 자리에 던져주고 회의실로 가던 그녀였다.
"종이 아깝게 하나 더 만들었데."
역시나 밉살스러운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던 그녀였다.
김대리의 히스테리로 파김치가 된 채로 퇴근했다.
"함박스테이크 사 줄게."
나를 위로하기 위해 입사동기가 경양식집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생일도 아니고 무슨 함박스테이크냐. 스트레스에는 매운 게 낫지."
우리는 길 건너편에 있는 분식집으로 들어가 쫄면을 먹었다.
쫄면은 맵기만 하고 맛이 없었다.
"쫄면은 우리 학교 앞 고인돌 분식이 최고였는데......"
우리는 학교 얘기로 깔깔거리며 스트레스를 날렸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김대리의 출근시간에 맞추어 일찍 가려면 나도 서둘러야 했다.
여느 때처럼 허둥지둥 집을 나와서 버스를 탔다.
입사동기가 빌려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느라 늦게 잔 탓에 피곤한데,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앉아 갈 수 있었다.
나는 깜빡깜빡 졸면서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렸다.
'헉!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버스정류장에서 선 채로 깜짝 놀란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까닭인 즉, 나도 모르게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고 와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내린 것이었다.
그건 늦은 시간까지 태백산맥에 미치게 한 소설가 조정래 님 때문이었다.
아니지, 어제 먹은 맛없는 쫄면 때문이었다.
아니다 아니야, 그 김대리가 화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