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버트 5

by 엘레강스박

12월 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 중학교 여자 동창 결혼식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예식장으로 갔다.

이제 해가 가고 한 살 더 먹는 게 달갑지만은 않은 스물여섯의 끝에 서 있었다.

대학 졸업을 하고 엄마가 걱정하는 취직도 했다.

그 월급으로 휴대폰도 구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더 이상 공중전화박스 앞에 줄 설 일도 없었고 어디를 가나 공중전화 앞은 한산했다.


보이는 동창들 몇몇과 눈인사를 하고 많은 하객들로 붐비는 앞쪽을 피해 뒤로 섰다.

신랑 신부가 입장을 하고 한창 예식이 진행될 무렵,

뒤통수가 따갑고 누가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예식을 보는데 또다시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길버트였다.

어릴 적 장난칠 때처럼 내 머리카락을 건드리곤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하아, 안녕."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3년 만에 보는 그는 슈트를 입어서인지 많이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때였다. 진동으로 해 놓은 내 휴대폰이 울렸다.

지난달에 소개로 만난 남자의 전화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일찍 도착한 모양이었다.

통화를 끝내고 조금 있으려니 예식도 끝나고 사진촬영만이 남아있었다.

오늘로 세 번째 만나는 그를 많이 기다리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진 찍고 가지, 밥 먹고 가지 하며 아쉬워하는 신부와 친구들을 뒤로하고 급한 일이 있다며 예식장 밖으로 나갔다.

도로변에 정차된 차들을 피해 그의 차를 찾았다.

그가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고 나는 그의 차 조수석에 앉았다.

차가 출발하는 동시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언뜻 정차된 차들 옆에 있는 길버트를 본 듯했다.

잘못 봤겠지.


소개남과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결혼식에 함께 있었던 여자 동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길버트들과 커피 한잔하고 오는 길이야. 길버트는 대학원에 갈 거라고 하더라.

엘레강스 너를 예식장 밖에서 보았다고 하던데? 흰색 세피아 - 당시 소개남의 차이름이다 - 타고 온 남자하고 가더라고......"


"엄마, 나 서점에 왔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빨간머리 앤 엽서책이 나와있어서 전화했어. 하나 사 갈까?"

"문제집 산다면서 돈은 되니?"

"응, 두 종류인데 하나 살 돈은 되어요. 어느 것으로 사 가지?"

"둘의 차이가 뭔데?"

"음...... 하나는 길버트가 있고 하나는 없어."

"그럼 길버트 있는 걸로 사 올래?"

이렇게 엄마를 생각해 주는 아이는 나의 딸이다.

24년 전의 그 소개남과 결혼해 낳은 나의 딸이다.

아이가 사 온 엽서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참으로 오랜 시간 내 마음을 지배해 왔던 '나의 길버트'가 생각나 미소가 지어졌다.



나의 길버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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