宮合

by 엘레강스박

"아이고야, 무슨 계단이 이리 많니."

무릎이 좋지 않은 예비 시어미니를 따라간 곳은 철학관이었다.

교제를 시작한 지 몇 달 지나 공식적으로 양가에 인사를 드리고 나니,

연상인 남편과의 나이 차도 제법 있어서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도 성실하고 예의 바른 남편이 맘에 들었는지,

믿을만한 소식통으로 시어머니의 성품을 전해 들은 바가 있어서인지

은근히 결혼 쪽으로 미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나는 좀 억울했다.

남편이 결혼 상대자로 꺼려지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시시하고 밀당 없는 단 한 번의 연애로 결혼까지 직진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가슴 절절한 사랑 한 번쯤 꿈꾸지 않은 여자가 몇이나 있을까.

남편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남자가 더 많이 사랑하는 결혼을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둥

눈물 한 방울 없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몸 바치겠다는 둥

귀신 씻나락 까먹을 소리, 개풀 뜯어먹을 법한 소리로 나를 구워삶았다.


어머님이 우리를 데리고 철학관으로 간 것은 궁합을 보기 위해서였다.

TV에서 무서운 화장과 요란한 차림의 무당을 본 기억으로 철학관 방문이 꺼림칙했지만,

어려운 위치의 어른이 가자고 하니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건물의 입구를 지나 좁고 많은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하니

단발머리에 검은테 안경을 쓴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오! 철학관은 내 예상과는 달리 학구적인 분위기였다.

손때 묻은 많은 책과 책상은 역술가의 오랜 경력을 말해주는 듯했다.

"음......"

남편과 나의 생년월일시를 받아 적고 한동안 무엇인가 휘갈겨 쓰던 아저씨는

우리의 얼굴을 지긋이 보더니 입을 떼었다.

"어머님이 보시기에 이 아가씨가 아주 조용하고 참해 보이시지요?"

뒷말에 반전이 있을 것 같아 나는 잔뜩 긴장이 되었다.

"사주에 불(火)이 많네요. 여덟 개 중 네 개가 불입니다."

어머님의 얼굴이 굳어지는 듯했다.

사주나 팔자나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들어도 불이 많다는 것이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드님이 불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결론은 내가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니 문제 될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철학관 아저씨는 이것저것 설명을 했고

우리는 '맞네, 맞아'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내가 잘 모르기는 하지만서도,

둘이 띠가 원진살인가 뭔가 있다는 것 같던데......"

한동안 사주풀이며 궁합 얘기를 듣던 어머님이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철학관 아저씨는 미소 지었다.

"어머님, 살이라는 것은 부부 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하수들이나 띠를 가지고 원진살이니 뭐니 하는데,

부부는 때로 보는 게 아닙니다.

내가 보건대 이 두 사람은 서로 해(害)가 될 건 전혀 없어요.

100점 만점에 80점은 넘으니 결혼시켜도 됩니다.

장담하건대 해로(偕老) 합니다."

나도 뒤에 안 것이지만,

'원진살'이란 궁합에서 꺼리는 것으로 이유 없이 서로 보기 싫어한다는 살이라고 한다.

명리학의 세계를 처음 경험한 나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고,

어머님은 그제야 안심한 듯 만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궁합 80점 이상 된다던 우리 부부는 결혼 후 피 터지게 싸웠다.

집에서 싸우다가 끝나지 않아서 점심시간에 회사 옥상에 올라가 전화로 싸우기도 했다.

한 번은 정말 크게 싸워서, 남편이 이혼하겠다고 애들을 차에 태워 다니며 방황을 하고

형님들이 달려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싸우고도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살며 굳은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궁합이 맞아서였을까.


요즘도 결혼 전에 궁합을 보냐는 말에 90년대생 조카가 말한다.

"사주요? 서로 맞다면 굳이 볼 필요가 있나요?

괜히 봤다가 결과 안 좋으면 찝찝하고 그렇다고 결혼을 안 할 수도 없잖아요?"

그녀의 말은 이치에 맞다.

일방적 짝사랑이 아니고 이성이 서로 끌린다는 것은

본심을 완전히 숨기거나 평소 행동과 180도 다르게 하지 않는 이상

그 궁합이란 것이 맞기 때문일 거라 인정한다.

그러나 내 자녀의 일이라면?

현대인들이 소위 '미신'이라 치부해 버리는 사주니, 궁합이니 하는 것들을 온전히 배척하지만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낀세대인 것인가.

역시나 결혼은 어렵다.

집에 오면 야구만 보고 있는 남 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늘 한결같던 그에게도 갱년기가 오는지 감정 기복이 보인다.

이마는 훤하고 과자 다 먹은 딸내미에게 서운해하는 저 아저씨가 정녕 내 천상배필이 맞는 것인지.

혹시 90점 이상 되는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어머님과 궁합 보고 가던 그날,

남편이 가파른 계단을 염려해 어머님을 부축해 앞장서서 가고 있었다.

거리를 두고 뒤에 가던 나는 철학관 아저씨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던 그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아가씨는 좀 더 있어보다가 결혼하는 게 더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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