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엄마

by 엘레강스박

나의 딸은 가성비로 자랐다.

어려서부터 학습지 외에는 공부 관련 학원에 다닌 적이 없고,

예체능에도 딱히 관심이 없어서 피아노 1년, 합기도 2년 배운 것이 다이다.

생계형으로 직장 다닌답시고 아이의 교육에 신경 쓰지 못한 나는 불량엄마였다.

중3이 되어 외국어고등학교에 원서 쓴다고 했을 때 기특하기도 했지만,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사교육으로 철저히 준비된 아이들이 가는 곳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불안감도 잠시, 딸은 당당히 면접까지 합격하였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나는 불량엄마가 되었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해서 밥을 해줄 일도 없었고

다른 고딩엄마처럼 학원셔틀 할 일도 없었다.

게다가 다니던 직장이 다른 지역으로 가는 바람에 실직을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계리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주말에 아이가 와도 나는 내 공부로 바빠서 여전히 신경 써 주지 못하였다.


어느덧 아이는 고3이 되었고 수능을 앞두게 되었다.

나는 시험에 합격도 했겠다, 남은 시간은 딸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기로 하였다.

첫 미션은 수능도시락이었다.

수능 한 달 전부터 유튜브로 수능도시락을 검색하여 이것저것 만들어 남편에게 먹여보았다.

고심 끝에 결정한 점심메뉴를, 수능 전날에 수능 점심시간에 맞추어

미리 준비한 도시락 용기와 가방에 넣어 아이가 먹어볼 수 있게 하였다.

모의실험을 해 본 것이다. 나는 신중한 ISTJ 이니까.

결과는 좋았다. 아이는 맛있어했고 장 트러블도 없었다.


수능 당일 새벽이 되었다.

나는 다섯 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였다.

후식으로 먹을 골드키위도 빼놓지 않았고

도시락 가방 지퍼가 잘 여닫히는지도 확인하였다.

아이에게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이고 시험장까지 바래다주었다.

날씨는 온화했고 아이의 컨디션도 좋아 보였다.

아이는 밝은 얼굴로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집으오 돌아온 나는 아이방에 들어가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침대정리를 하였다.

책상에 어질러진 엿과 떡과 초콜릿도 가지런히 두었다.

그리곤 주방에 가서 설거지도 끝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다.

그러나 커피 한잔 마시려고 나의 눈이 정수기로 향한 순간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아이의 도시락 가방에 들어있어야 할 수저통이 싱크대 위 정수기 옆에 얌전히 앉아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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